박 송 훈
대한공공의학회 대의원

동대구역과 인근의 고속터미널은 오래 전부터 서울을 포함한 전국의 도시를 연결하는 관문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이곳에 복합환승센터가 건립되면서 시외버스와 고속버스 터미널이 이전해 들어왔다. 이제 동대구 역세권은 외지로부터 시내버스와 지하철 노선이 연계되는 명실 공히 대구광역시 교통의 중심이 되었다. 버스나 택시를 타기 위해 동대구역 광장에 서면, 광장을 중심으로 남북을 가로지르는 왕복 10차선의 넓은 도로가 있다. 북쪽의 파티마 병원에서 시작해 남쪽의 수성못까지 일직선 6km에 이르는 광활한 동대구대로(東大邱大路)다.

50년 전 대구시가 도시 개발을 시작하면서 도심의 대구역이 지닌 한계로 인해 동부 외곽 지역에 별개로 동대구역을 신설했다. 그리고 도시 내의 원활한 교통 순환을 위해 동대구대로를 만들고, 신작로에 수백 그루의 히말라야시다(Hymalaya cedar)를 가로수로 옮겨 심었다. 히말라야시다의 거리는 파티마 병원에서 범어로까지 3km 구간에 이른다. 중앙분리대와 양쪽 끝 차선에 웅장하게 늘어선 나무들은 보기에도 시원한 느낌을 준다. 동대구로 높은 빌딩의 옥상에서 보면, 대로의 거리에 줄지어 서 있는 히말라야시다의 행렬은 그야말로 장관(壯觀)의 모습을 연출한다.

히말라야시다의 원산지는 아프가니스탄 동북부의 힌두쿠시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이다. 동쪽으로 이동하며 그 이름이 히말라야시다가 되었고, 서쪽으로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건축 자재인 레바논시다(레바논 삼나무)와 터키의 사이프러스시다가 서로 한 종류에서 비롯했다.

히말라야시다는 1930년경 처음 우리나라에 도입된 외래종으로 소나무 과에 속하지만 소나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생장속도가 빠르고 병충해가 거의 없으며 공해에 강한 것이 특징이다. 낙엽송 잎갈나무와 모습이 엇비슷하지만 늘 푸른 나무이기에 개잎갈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밑동이 굵고 30∼50m 높이로 자라는 히말라야시다의 위풍당당한 모습, 가지의 풍성한 잎들이 보여주는 클래식한 안정감, 상록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원이나 공원의 조경수와 관상목으로 이만한 수종이 따로 없을 것이다.

대구의 오래된 공공기관이나 공원, 교회와 병원 등지의 정원에는 흔히들 히말라야시다 몇 그루 이상을 볼 수 있다. 예전에 10년 동안 근무했던 대구소년원의 운동장 주변에도, 청년 시절 공부했던 의과대학의 교정에도 히말라야시다가 있었다. 장대한 나무의 무성한 잎은 무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그늘이 되고, 겨울이면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되곤 했었다. 히말라야시다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미학적 아름다움 때문에 히말라야시다는 설송(雪松)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나무의 외형적 안정감과는 달리 히말라야시다는 그 뿌리 내림이 약해 폭우나 폭설, 강풍에 잘 쓰러지고, 가지가 높이 뻗어 나무의 관리가 그리 쉽지 않다. 또한 나무의 직경이 30∼40㎝ 이상으로 크고, 뿌리 전체를 들어내기 힘들기 때문에 옮겨심기가 힘들고 심어도 잘 자라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가로수로는 부적합한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고 장엄한 모습 때문에 도시의 미관을 장식함에 있어서 나름대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들 정원수로 심어졌던 히말라야시다가 가로수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아마도 동대구로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70년대 대구 시가지의 가로수가 온통 플라타너스 일색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당시로서는 대구에서 제일 넓은 동대구 신작로에 히말라야시다 가로수 숲의 등장은, 대구 시민들의 정서에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오랫동안 깊은 감성적 영향을 끼쳤다.

60년대 후반부터 국가 개발과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대구도 전출입 인구의 이동이 몇 배나 증가했다. 히말라야시다의 거리를 지나며,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은 살아 왔던 도시의 향수를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겼으며, 새로운 정착지로 대구로 전입해 오는 사람들은 이국적(異國的) 나무들과의 인상적 첫 만남을 가졌다. 그 이후로 동대구로의 히말라야시다는, 대구를 떠나거나 지속적으로 살아가는 지금의 중장년층들에게는 추억의 뿌리, 정신적 상징처럼 자리해 왔다.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동대구역의 거리를 지날 때 그들이 느끼는 히말라야시다 가로수의 감회는 아주 특별한 듯하다. 대구 출신의 여류 소설가 김모 씨는, 자신의 수필에서 동대구로의 히말라야시다를 `춤추는 히말라야시다'라고 비유했다. 바람에 천천히 일렁이는 풍성한 히말라야시다 가지의 춤, 그 춤사위는 분명 우리 식 승무의 동작을 연상하게 한다. 고향 땅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히말라야시다의 춤사위는, 피트 하밀(Pete Hamill)의 소설 `귀향(going home)'의 마지막 장면, 옛 동산 떡갈나무에 걸린 수십, 수백 개의 노란손수건처럼 그리움과 환희의 감동적인 이미지가 아닐까.

그렇지만 동대구로 히말라야시다 교체문제가 20여 년 전부터 불거졌다. 척박한 토양에 심어진 히말라야시다가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해 나무가 자랄수록 폭우와 태풍에 취약하고, 늘어난 교통량으로 인해 교통 불편과 위험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대구시는 줄곧 수종 교체나 수목 제거를 검토해왔다. 반면에 시민들은 동대구로 히말라야시다가 대구광역시를 대표하는 상징 가로수이며, 동대구역을 통해 들어오는 외지인들에게 도시의 첫 인상을 각인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해왔다.

결국 시당국은 고목의 쓰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나무 몸체에 기다란 버팀대를 받치고, 군데군데 세세하게 가지치기를 해서 지금의 히말라야시다 나무들은 그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털 뽑힌 닭처럼 보기가 민망하고 안쓰럽기 그지없다. 또한 2016년에는 복합환승센터 완공 후에 예상되는 교통 혼잡을 줄이고, `동대구로 지하 진출램프 공사'를 위해 주변의 일부 도로에서 히말라야시다 수 십 그루를 제거했다. 50년 도시개발의 역사의 후유증, 히말라야시다의 볼품없이 야윈 모습에서 오랜 기간 낙후되어 온 대구 경제를 보는 것만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어쩌다 일 년에 한 두 번은 포항에서 열차나 고속버스로 동대구역 광장의 정류장에 선다. 버스를 타고 창가에 줄지어 늘어선 히말라야시다의 거리를 지나노라면, 동대구로가 서기 전 얕은 구릉지의 붉은 복사꽃 언덕과 계곡 아래로 이어지는 한적한 시골길, 맑은 물이 흐르던 범어동 물레방앗간의 어렴풋한 기억이 아직도 새삼스럽다. 그곳에 건설된 신작로에서 반세기를 지켜 온 히말라야시다도 조만간 사라질 예정이고, 요즈음 한참 거론되는 메타세콰이어나 이팝나무로 새롭게 단장될지도 모른다.

나는 대구를 떠난 자식에게 동대구로 이전의 구릉지와 풍요한 수성 벌판의 모습을 얘기하고, 아마도 자식은 손주에게 고풍스러운 히말라야시다 거리를 옛 이야기처럼 전해 주리라. 어쩌면 내가 두 가지 추억 모두를 장성한 손주에게 말해 줄 수 있다면 더 할 수 없는 행운이 아니겠는가.

원초적인 인간의 역사란 그런 것이다. 구전에서 구전으로 아래로 흘러가며 쌓이는 추억과 향수의 전설과도 같은 것이다. 그 흐름의 와중에 나무의 특성이나 토질을 고려하지 않고 심어진 나무들은 오래 지탱하지 못한다는 타산지석의 교훈. 우리 사회의 척박한 토양에 심어진 자유민주주의, 시장주의 경제라는 나무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오늘의 동대구로 히말라야시다가 처한 운명을 보면서 나에게는 그 역사를 기억하고 전해 주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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