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송 훈
대한공공의학회 대의원

동풍이 불면
너의 향기를 보내다오
매화여, 주인이 없다하여도
봄을 잊지는 말아다오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眞 845∼903) -

큐슈, 다자이후의 텐만구(天滿宮) 입구에는 스가와라 미치자네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스가와라가 큐슈의 다자이후로 좌천되자, 교토를 떠나면서 본가의 정원에 아끼던 매화와의 석별의 정으로 읊은 시가 검은 화강암 비석에 새겨져 있다.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 다이고 천황의 조정에서 우대신의 지위에까지 오른 스가와라였지만 그의 과감한 중앙집권적 정치개혁(율령제)을 반대하는 기득권 귀족들의 극렬한 저항에 부딪혔고, 결국 좌대신 후지와라노 토키히라(藤原時平)의 참소로 인해 실각하여 다자이후정청(大宰府政廳)의 지방 관리로 밀려났다(쇼타이의 변, 901년). 정치적 탄핵으로 실의에 빠진 스가와라는 갑자기 찾아든 병고로 인해 다자이후로 좌천된 지 2년 만에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스가와라가 죽자마자(903년), 그를 참소하고 비방한 후지와라의 느닷없는 죽음을 시작으로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계속 급서(急逝)하거나 궁중에 낙뢰가 떨어지는 등 무서운 재난이 잇따랐다. 사람들은 이를 스가와라 원령의 저주라 여겼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벼락의 신'으로 인식해 그를 천신으로 삼았다. 조정에서는 스가와라의 저주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를 태정대신으로 봉하면서 교토와 다자이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텐만구를 건립했다. 그리고 점차 재난의 기억이 흐려지자 사람들은 스가와라의 뛰어난 학문과 지식, 문학적 자질을 연관시켜 그를 `학문의 신'으로 받들어 추모하며 숭배했다.

■텐만구 가는 길
일본 각지에 12,000여 개소의 텐만구가 있지만 교토의 기타노텐만구(北野天滿宮)와 다자이후의 텐만구가 총본산이라 할 수 있다. 문인이며 학자로서 정치적 역정을 걸어갔던 교토의 기타노텐만구는 스가와라가 무녀와 신관의 현몽에 나타나 계시를 했던 자리에 지었다 하며, 다이자후텐만구는 그의 묘가 안치된 자리에 창건되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일본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참배자와 중국과 한국인을 비롯한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방문하다 보니 텐만구 입구에는 자연스럽게 기다란 상가가 형성됐다. 텐만구를 찾은 날이 금요일이지만 이곳 상점가의 200여 미터 보도블록의 거리에는 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인다. 늦가을의 흐리고 쌀쌀한 날씨임에도, 입시와 취업 시즌을 앞두고 스가와라 텐진(天神)에게 수험합격(受驗合格)과 학업성취를 기원하기 위해 큐슈 지역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학생과 학부모, 취업준비생들이 대부분이다.

`우메가에모찌(매화가지 떡)'는 찹쌀 반죽에 팥소를 넣고 매화꽃 문양의 틀에 넣어 구운 야끼모찌(燒餠)다. 다자이후의 명물인 이 모찌를 파는 가게 앞은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고 신사의 방문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이 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알려진 유명세처럼 그렇게 감동적인 맛은 아니지만, 구운 떡의 바삭바삭한 식감과 팥고물의 단맛이 그런대로 입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이 떡에 전해지는 얘기, 당시 좌천당해 있던 스기와라를 딱하게 여긴 한 노파가 창살 틈으로 이 떡을 건넸는데, 매화나무 가지에 꽂아서 건넸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상점가를 지나자마자 입구 벽의 우측에 노래비와 황소동상(御神牛, 고신규)이 나타난다. 황소에 얽힌 일화, 스가와라의 사후에 시신을 교토로 옮기려 했으나 우마가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음으로 그곳에 장례를 치렀다 한다. 지혜로움의 상징이 되어버린 황소, 만지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학문의 신에 대한 지나치게 오버된 전설 때문일까. 참배객들에 의해 황소의 콧등과 머리, 뿔까지 노란 빛이 반짝일 정도로 매끄럽고 반질반질하다. 언제부터인가 고신규는 텐만구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가 되었다. 텐만구 넓은 정원에 석상을 포함하여 고신규가 7개나 있다고 하니 보물찾기라도 한 번 해봄직하다.

텐만구에는 `도리이(鳥居)'라고 하는 하늘 천(天)자 모양의 석문이 세 개나 서 있다. 굳이 우리와 비교한다면 솟대나 홍살문, 산사의 일주문과 비슷할까? 도리이는 인간과 신의 영역을 구분 짓는 경계선의 역할을 한다. 다자이후 텐만구는 신사가 아닌 신궁으로 일본인들에게 그 정신적 위상이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자리한다.

본전으로 가는 길에는 매화와 벚나무, 그리고 수령을 짐작할 수 없는 거목들로 어우러진 정원이 있으며 그 중심에 조경이 아름다운 연못과 다리가 있다. 연못은 `心'자 형태로 생겨 신지이케(心字池)로 불린다지만 사람들로 북적이는 다리 위의 좁은 전경에서는 구체적인 형태를 알 수가 없다. 신지이케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의미하는 세 개의 다리(타이코바시, 太鼓橋)가 지난다. 과거의 다리에서는 뒤를 돌아다보지 말고, 현재의 평교(平橋)에서는 마음을 평정하게 하고, 미래의 타이코바시에서는 넘어지지 말라는 설화, 언뜻 스가와라의 한탄과 비애의 말년을 보는 것 같아 애틋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붉은 칠을 한 문(로몬, 樓門)을 지나니 텐만구 본전의 앞마당이다. 돌아보니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 석등과 2층 누각의 화려함이 압권이다. 로몬의 하얀 현판에는 `登龍門傳說 龍天神'이란 글귀가 쓰여 있고, 난간에는 연꽃을 중심으로 좌우에 두 마리 잉어와 용의 활기 찬 모습이 커다란 나무 조각상으로 새겨져 걸려 있다. 이는 잉어가 중국 황하의 급류를 뛰어 올라 용으로 승천한다는 등용문의 전설을 입신출세의 의미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본전을 향하는 넓은 뜨락의 입구에 세워진 이 누각은, 학자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와카(和歌)와 한시문에 출중한 재능을 보였고, 국풍문화를 선도했던 `학문의 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높은 위상을 참배객들에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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