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 경 교수

오래 전에 북한의 김만철씨 일가족이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서 귀순한 일이 있다. 김만철씨가 북한에서 의사였다기에 나도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그중에 기자회견에서 얘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기억한다.

“어떤 기자: 이북에서는 대학을 진학할 때 가장 인기있는 과목이 무엇입니까.

김만철씨: 공장기술자가 되는 공과계통입니다.

어떤 기자: 여기서는 의과대학이 가장 인기있는 곳인데 그 쪽은 어떻습니까.

김만철씨: 의과대학은 인기가 없습니다. 거긴 나와봐야 의사 밖에 더 됩니까.”

나는 당시에 이 문답을 듣고 다음과 같은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의사가 되기 때문에 의대를 가는데 저들은 의사가 되기 때문에 의대가 인기가 없다고 한다.

분명히 그쪽 의사나 이쪽 의사나 의사로서 하는 일은 같은데 무엇이 그러한 싫고 좋고를 구분하게 하는가? 며칠간 생각하던 중에 나는 `남한의 의사에서 북한의 의사를 `빼기'해 보면 남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많을수록 의사에 대한 직업적 선호도는 커지고 결국 그것들이 의사라는 직업계층이 갖는 기득권들일 것이다'라고 나름대로 결론내리고 말았다.

이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환자와 보호자에게 시달리던 어느 응급실 당직의사의 말을 짚고 넘어가려 한다. “선생님, 제가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장사꾼이라고 하더라도 저 사람이 이렇게 무례하게 대할까요”, “선생님들은 기성세대로 이미 기득권의 맛을 봤으니까 지금과 같이 매도당해도 덜 억울하겠지만 우리는 그런 보상도 없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게 돼서 억울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선배님들 책임이라고 봅니다”

이처럼 우려되는 현상들은 어쩌면 과거 자본주의적 자유방임 의료에서 사회주의적 사회보장 의료로서의 전환과정에서, 의료수요를 당연한 권리로 요구하게 된 국민들과 기득권 계층인 의사 간의 갈등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는 의사가 자기자본의 투자를 통해 시설, 설비, 장비 등을 갖추고 자신의 의학기술을 상품으로 의료수요에 맞춰 이윤을 창출하는 의료서비스가 대부분인 것 같다.

중복투자나 밀집을 예방할 수 있는 종합적 관리기능이 부재하므로 자본의 이익창출이라는 당연하고도 명백한 자본주의의 최고 가치에 따라 의료의 행태도 상호 경쟁적이며 비협조적이다.

제공하는 의료의 모습도 의료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변질되고, 의사들도 부가가치가 많은 상품을 선호하게 되며, 젊은이들도 전공을 선택함에 있어 현실적 추세에 따라 선호하는 과목의 유행을 타게 된다고 본다.

이러한 상황이 표준치료의 확신이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과 무계획적으로 융단폭격하듯이 쏟아내는 의사와 그에 따른 질적 저하 및 지역적 의사 인플레 현상이 겹쳐, 국민들의 눈에는 과거와 같이 인술을 베푸는 선생님이 아니고 작게는 구멍가게를 차리고 있는 주인아저씨에서 크게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기술직 아저씨 정도로 밖에는 보여지지 않을 것이다.

공공자본이 뒷받침해 주는 공공의료의 질적 및 양적수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모자라는 의료보장의 대부분을 민간의료에 반강제적으로 위임하여 그들로 하여금 속수무책인 상태로 국민들과 충돌하게 만들며, 국민들에게 문제의 본질에 대한 홍보나 개선의욕보다 마치 의사나 의료계가 복지사회 건설에 역행하며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기득권집단의 이익만 고수하려고 하는 파렴치한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지게 방기한 상태로 끊임없이 매도되게 하고 있다.　

선 경 <고려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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