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태 원장

의료급여제도의 변경, 외래 본인부담금 정률제 실시, 청구소프트웨어 공인인증서 설치, 성분명처방 시범실시, 1회 복용량 동일시 고용량 처방 의무화, 요양기관 5개 유형별 수가계약, 의료폐기물 전자태그 부착의무화, 외래진료비 일자별 청구, 의료장비현황 일제정비 신고 등, 이들은 은하계의 행성이나 판타지세계에 있는 도시의 이름이 아니다.

새로운 정책들의 포장지 이름이다. 연일 쓰나미처럼 정신없이 밀려오는 공격적이며 일방적인 행정조치의 종류이다. 문제는 짧은 시일 내에 한꺼번에 실시한다는 점과 의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들여다보면서 자유로이 통제하거나 조절하겠다는 의도이다.

아무리 의도하는 바가 순수해도 받아들이는 의료계의 환경과 정서, 행정이해능력을 헤아려 일정시간의 학습 및 예행시간을 제공하지 않고 주인이 종 부리듯 통고만 하게 되면 고통과 불만은 증폭되기 마련이다.

일정시간을 두고 정책을 홍보해야 하고 시범실시를 통하여 실제로 흔히 일어나는 착오나 실수에 대한 지도를 해야 하며 문제의 발생시 시원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사슬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평생 종이만 만지작거리고 통제와 감시의 방법만 연구하는 행정가라면 몰라도 병의원처럼 인력이나 시간이 절대 부족한 열악한 환경에서 여러가지의 정책이나 제도가 일시에 시도되면 죽을 지경이 되고 만다.

의사들은 무한의 능력을 가진 슈퍼맨도 아니고 이름만 알려주어도 알아서 하는 천재가 아니다. 환자를 잘 보기 위한 학문적 스트레스라면 어떤 경우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의 대부분을 잡다한 행정적인 일에 쏟다 보면 진료는 하 순위의 일로 밀려나고 자신이 의사가 아니고 옥죄고 있는 환경의 포로가 된 것처럼 착각이 들 정도가 되고 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의료급여제도의 변경에 대한 혼란은 실제로 어떤 프로세스를 밟아야 제대로 청구가 되는지 잘 알 수 가 없고 주어진 시간도 모두 부족했다.

완벽하게 fill up하고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청구금액을 주지 못하겠다는 것이 공단의 입장이며 비합리적인 조치이기 때문에 협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의협의 지침이다. 특히 제대로 소정의 절차를 걸친 청구를 하지 않으면 청구비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기관의 자세는 가장 치졸하고 유치한 그야말로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초적인 행위일 뿐이다. 복지부나 공단 및 의협의 공문을 접수했으나 그대로 따라 가기만 하면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는 매뉴얼이나 실례를 통한 자세한 설명이 없다.

동료의사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귀동냥을 해야 하고 관계기관에서 내려보낸 각종 공문을 수십 번 읽어보고 뜯어보아야 알 듯 모르듯 하다는 기막힌 현실이다. 의사들은 그야말로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말 못하는 벙어리 신세가 되고 마치 인화물질을 기다리는 기름과 같은 존재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의사들을 알몸으로 벗겨 대중 앞에 내다보이려는 작전은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음은 간파하고 있는 사실이다.

조직과 권력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감시는 어디서나 존재할 수 있는 인간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그 권력의 남용과 이로 인한 침해의 가능성은 상존하는 본질적인 문제의 하나로 이의 척결은 숙제로 남아있다.

오늘날 우리가 일하는 현장의 일들의 내용은 고도의 전자감시와 통제가 없는 권력의 결합으로 거의 누드화 되어 자유와 인권이 침해당하는 일들을 흔히 목격한다.

미셸 푸코의 panopticon의 세계에서 보듯 여기 원형으로 된 감옥이 있다. 원의 중심에는 감시탑이 있는데 그 안에는 간수가 있으며 어둡게 해 놓아서 밖에서는 들여다 볼 수 없는 구조다.

한편 감방들은 중심으로 향하는 창을 가지고 있고 감방은 환하게 불을 밝혀져 있어 간수는 외부에서 시시콜콜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다. 간수를 못 보는 죄수는 언제 감시당하고 있는지 모르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감시는 정보를 캐는 것만이 아니고 제어나 통제로까지 활용되거나 확장되고 만다. 발전하는 기술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가 약한 사회에서 감시기술의 무한 중독은 마음만 먹으면 자유와 권리를 얼마든지 침해할 수 있다.

특히 권력의 의지가 투사되었을 때는 가공할 능력을 가지고 완벽한 감시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유독히 의사들만 잡혀있는 원형감독을 부수고 간수를 어떻게 해 볼 대책이 있어야 한다. EDI의 덫에 걸리고 사회주의의 망령에 치이고 대다수의 폭민에 밀리고 그야말로 죽도록 서비스만하고 감시사회의 대표적 scape goat로 전락해 가는 의료계의 모습을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답답할 노릇이다.

대학과 종합병원과 Local clinic이 생각이 다르고 각개 약진하며 꼴값을 떠는 여건과 상황에서 이들을 이간시키고 궤멸시킨다는 것은 오합지졸을 다루듯 식은 죽 먹기 일 것이다. 의료급여제도의 급작스런 변경에서 빚어지는 혼란처럼 앞으로도 온갖 행정적 횡포와 겨드랑이의 털까지 세어 보려는 시도는 틈을 주지 않고 지속적으로 시도될 것이다. 이미 실기를 했지만 지금이라도 중지를 모아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요, 정의없는 힘은 폭력이라고 했다. 정의와 힘을 갖는 의사단체의 탄생은 언제쯤이나 가능할까.

박현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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