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태 원장

지루하고 습한 여름을 지나기도 어려운 터에 우리는 의료와 연관된 한미 FTA 협정자체와 약가 포지티브제도의 향방에 대한 우려 외에도 소아과의 개칭문제를 비롯하여 의협 내부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사건들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진실게임을 하듯 진위를 캐는 일과 문제의 본질적 해결보다 감정대립에 함몰되어 출구가 없어 보인다. 작금의 사태도 예외가 아니듯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속성 중의 하나가 변화이며 이러한 속성으로 비롯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법과 제도라는 장치가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기본자세로 요구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성적 능력에 근거하여 사물과 사건의 본질을 보고 그에 대한 대화와 토론의 방법을 훈련받는 합리주의교육과 어떠한 결정과 행동으로 인하여 야기될 수 있는 최종적 결과와 파급효과까지를 예측하여 철저히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는 실용주의교육이다.

이들이 결여된 환경 속에서 성장하거나 또는 진화되지 못한 제도 속에 살아온 인간은 대개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서 형성된 준거의 틀에서만 사고하기 때문에 문제 발생시 해결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현대경영학에서는 목적지를 찾아갈 때 사용하는 지도나 네비게이션이 필요하듯 잘 만들어지고 발전된 제도가 있으면 조직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그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길이 있고 그에 상응하는 상벌도 명시되어 있어서 원칙적인 해결방법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한편 제도를 발전시켜 인간을 그 틀 속에 넣어야만 효과적이며 편리한 조직운용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집단들간에는 각종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인 공동체적 규범이 필요하고 그 규범은 감성적이거나 도덕적인 호소를 초월해 현실적인 설득력을 가져야 하며 이러한 규범이 정착되려면 무엇보다 관용의 철학과 타협의 훈련이 요구되는데 이것의 부족함도 현재의 상황을 더 어렵게 하는 한 요인이 되는 것 같다. 

내부 감정대립에 대외투쟁등 엄두못내

이익이 상충할 수밖에 없는 다원화 사회에서 이해당사자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이다. 관용의 본질은 `화이부동(和而不同)' 즉 동의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용인하는데 있다.

`흑'이 아니면 `백'이라는 발상으로는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 위임된 권력은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을 성취하거나 남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되며 그 권력은 항시 정상작동이 되도록 감시와 비판과 견제의 틀 안에 있어야 한다.

즉 권력에 탐닉해서도 안되고 권력운용에도 신중해야 되는 것이다. `지휘관은 독수리와 같아서 높은 나무 위에 고독의 집을 짓는다'고 했듯이 최종 결정에 실수가 없어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결국은 혼자 지게 됨으로 상황논리에 강하고 신중해야 하며 고독해야 한다.

카운터 파트너도 사건을 사람중심(person-oriented)의 시각보다 문제중심(problem-oriented)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며 문제의 제기만 하지 말고 합리적이고 원만한 해결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해 주어야 한다. 사건의 진상을 소상히 밝히고 이에 대한 충분한 해명과 토론의 기회를 가져서 어떤 방향이든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야 한다. 

의사사회 권익 최우선 현실게임 매진을

풍부한 감각경험과 지혜를 갖춘 원로도 나서서 지도·설득해야 하며 제도와 절차를 재정비하여 이러한 상황이 재발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숱한 절충과 타협의 학습을 통해 관용을 배우고 베풀 줄 알아야 한다. 기원 전 3세기 북부그리스지방에 한니발도 인정하는 병법의 대가 피로스(Pyrrhus)를 왕으로 둔 에페이로스는 신생로마제국과 싸워 두 번이나 승리했으나 아군피해가 너무 컸다.

왕은 “이런 승리를 거두었다가는 우리도 망한다”고 하여 이후 실속 없는 승리, 엄청난 비용과 대가를 치르고 얻게 되는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라 한다. 우리 의료계는 사회주의자들이나 반 의료계정서를 가진 집단들에 둘러싸여 이익분쟁은 커녕 권리분쟁조차도 일으키지 못하고 노예적 삶을 연명하는 처지에 있을 뿐 아니라 현 상황이 의사 사회가 아노미상태에 있는 것으로 비추어 질 수 있으며 그들에게 웃음거리를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기는 자가 있어도 내부의 문제해결에 에너지와 시간을 소진하면서 대외적인 투쟁이나 로비의 기회를 놓치게 되면 그 승리는 실속 없는 `피로스의 승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의사사회의 권익을 최우선에 두는 현실게임에 매진하자.

박현태<강남 박현태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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