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태 원장

조용히 논밭 농사를 하고 산에서도 여러 작물을 키우며 열심히 살아가는 선량한 사람들이 있다. 관청에서야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정책으로 계속 괴롭혔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일이야말로 천직이라 여기고 열심히 연구관찰하며 농작물을 가꾸어 이런 과정에서 얻은 과실로 남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면서 그런대로 살아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멧돼지가 나타나 그들의 터전을 짓밟고 애써 키워놓은 과실을 먹어 치우거나 물고 달아나는 일이 빈번해 졌다. 　

 그들은 배우고 닦은 것이 농사 뿐이라 동물을 해치거나 죽이고 싶은 생각은 가질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점차 인내에 한계를 느껴 멧돼지의 포획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하게 되고 총으로 쏘아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생겨난 것이었다. 　

그들은 전문 포수들에게 멧돼지 사냥을 의뢰하기에 이른다. 자신은 오랜 경험에 의한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일에는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나이든 포수와, 이론적으로 학습하고 입력해온 멧돼지에 대한 지식으로 빈틈이나 실수 없이 매뉴얼대로 수행만 하면 성공적 사냥을 할 수 있다는 젊은 포수. 그들은 멧돼지가 다니는 길목에서 며칠이고 함께 잠복해 보지만 기척이 없었다.

자신을 잡아 보려는 포수들의 의지를 간파한 멧돼지는 그들을 측은히 여겨 이들에게 순간이나마 총을 쏠 기회를 주고 잠시라도 스트레스를 풀어 줄 작정으로 도망갈 수 있는 철저한 계획을 세운 뒤 작전에 들어갔다. 지쳐 가는 이들 앞에 멧돼지가 순식간에 나타나자 포수들은 나름대로 엉겁결에 총을 쏘아댔다. 멧돼지는 저쪽 길 옆 숲 자락에 죽은 듯이 쓰러졌다. 두 포수는 각자 자기가 쏜 총알이 명중을 시켰노라고 주장한다.
 
때마침 지나가던 나그네는 자기가 똑똑히 보았으되 분명히 저 멧돼지는 총을 맞고 쓰러진 것이 아니고 돌 뿌리에 걸려 넘어졌을 뿐이라고 우긴다. 이들은 멧돼지의 몸에 있을 총 구멍을 찾아보기로 하고 누워있는 녀석의 털을 뒤지기 시작했다. 간지러워 견디다 못한 멧돼지는 순식간에 전력을 다해 미리 파악해 놓은 도주로를 따라 줄행랑 치고 말았다. 　

나그네는 박장대소하며 자신의 말이 옳았음을 떠들어 대고 두 사냥꾼은 의기소침하여 할 말을 잃고 있는 틈에 멧돼지는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이들은 서로의 입장만을 내세우고 승패에 대한 주장만 했을 뿐 진작 목표물인 멧돼지를 확인사살 하거나 도망에 대비하는 등 상황의 변화에 따른 포획방법을 강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멧돼지인 거야. 일단 잡고 보아야지” 의협 회장 보궐선거와 공석인 서울시의사회장 선출 등 복잡한 상황 속에 우리 내부의 힘이 분열되고 소진되는 국면을 맞게 되자 기회를 포착한 정부가 일방적인 정책들을 강요하고 시험하고 있다.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이 비참한 현상의 본질은 요약하건데 의료보험제도 자체와 2000년도에 시작된 의약분업 및 의료행위를 옥죄는 치외법권적인 온갖 규제에 있다. 의사들의 희생을 전제로 GNP 700불 시대에 무력으로 탄생시킨 의료보험제도는 의사들의 권리와 삶을 짓밟은 독재권력의 일방적 작품으로 원천무효이다. 　

의약분업 전에 비해 약에 관한 것만 약사에게 이전되었음에도 분업이전의 총 진료비 4조2000억원이 분업 첫해 약사에게 지급된 액수만 4조6000억원이 되었다면 당장 폐기해야 할 정책임은 뻔하다. 의사들로 하여금 지속적인 지식 쌓기와 정보습득으로 환자를 잘 보아 내는 일 보다, 수없는 규제에서 벗어나는 일에 골몰하게 만드는 정책들, 이런 부분을 은폐하고 의사들을 노예로 가는 블랙홀로 등떼미는 의사가 없으면 그 존재가치도 없는- 집단들의 무소불위의 횡포를 원천봉쇄 해야 한다. 중병으로 빠져들고 있는 의료계의 비극적 현실 앞에서 경륜과 젊음이, 지혜와 열정이 싸우고 시기할 필요가 없다.

이 틈에 잘못된 시도들이 힘을 얻고 자리 매김 하면 우리는 결국 공멸하게 될 것이다. 지속된 투쟁을 요하는 근본적인 것들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제의 정책들을 장단기 목표로 나누어 이 부분만 다루는 TF팀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의사조직들 사이의 갈등해소와 이해조정을 통하여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포악무도하며 쉼 없이 우리의 터전을 더럽히는 멧돼지 사냥을 우리의 공동목표로 올려놓아야 한다. 신임회장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격려해 주자.

힘을 합쳐서 투쟁하고 권리와 자긍심을 되찾아야 한다.

박현태 <강남 박현태내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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