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소자 원장

지난 10년의 세월은 우리나라를 정치·사회적으로 잃어버린 10년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에 더해 의료계는 생각하기도 끔찍한 악몽의 연속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텅빈 악몽의 시간속으로 의료계에는 숱한 사건과 사고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의료법 개악 파동, 사회주의 체제로 급변한 체제의 회오리, 시시각각 옥죄어 오는 의료계에 대한 속박을 벗어나기 위한 시위 등 도대체 환자를 돌볼 마음의 여유를 없게 하는 사건의 연속이 되풀이됐다. 　
 
특히 정부의 선동으로 여론이 조작되어 이제 의사는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전임 의협 회장단이 펼친 대국민, 대정부 호소활동이 부도덕한 로비 활동으로 찍혀 회장단 일괄사퇴로 의협은 무주공산이 되어 의료계는 무장 해제된 패잔병 신세로 전락할 지경이 됐다. 　

하지만 국난이 닥치면 구국영웅이 등장하고, 가정이 기울면 기둥을 떠받칠 인물이 등장하듯 누구나 기피하는 의협 회장에 5명이나 십자가를 자청하고 나섰고 믿음직한 신임회장이 당선되어 쓰러져 가는 의협의 받침돌이 되었다. 　

아직 체제정비나 전 회장단이 남기고 간 교사적 유산이 채 정리되지는 않은 때로 너무 이른 감이 있지만 새 집행부에 대한 소망을 미리 말씀드리고자 한다. 　

우선 의협에 대한 올바른 위상확립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의사는 인간의 생명을 볼보로 자기권익만 지키기에 급급한 파렴치한 이익집단 구성원이라는 왜곡된 인식에 매도되어 왔다. 이런 인식은 의사 개개인의 자존심 문제이자 의협의 존재이유를 깔아뭉개는 것으로 반드시, 제일먼저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오랜 기간 형성된 이 왜곡된 인식을 단시간 안에 깨기는 힘들겠지만, 울지 않는 꾀꼬리는 죽일 수도 없고 울기를 기다리는 여유도 없으니 공동체 의식아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투명한 회무 집행과 시스템정비,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를 통해 꾀꼬리가 울도록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사가 불신을 받으면 치유도 어렵고 예방도 불가능하다. 누가 믿지 않는 사람의 말을 듣고 실천하려 하겠는가. 　

그 다음은 의사 수 1만명 시대에 만들어진 의협이 10배 가까이로 불어난 8만9000여명의 전문가 단체로 성장한 지금 거의 구태의연한 회무 관행을 깨트려 새 단체 새 얼굴을 국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고인 물이 썩듯 내부 자정능력을 잃은 단체는 항상 뿌리가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될 수밖에 없다. 개혁은 어렵다. 역대 정권마다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거의 된 것이 없는 만큼 이 어려운 개혁의 위기를 딛고, 고삐를 잡은 새 집행부가 해내길 기대해 본다. 　

또 있다. 의사가 너무 많다. 국민 몇 명당 의사 몇 명씩으로 탁상에서 계산한 의사수가 도시집중화, 비보험 의료인 증가로 부익부 빈익빈화 되어가고 있다. 70세가 넘어 까지 병원을 지키는 숙련된 노(老)의사는 늘어가고 연 3500명씩 나오는 새 의사들의 설자리를 모색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새 집행부의 연구 과제이다. 　

의대 증설 및 통폐합을 정부와 협의하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 힘은 의사들의 단결로 가능하고 집행부는 의사들을 뭉치도록 하는 방법을 모색, 국민과 정부 모두에게 신뢰받고 얕잡아 볼 수 없는 단체로 만들어야 한다. 　

FTA 타결이후 몰려오는 외국의사들은 어찌할 것인가. 거기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전체의사의 30∼40%를 넘는 여의사의 권익도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보건복지부장관을 2명이나 배출하고 내과·소아과·산부인과·가정의학과 등 9개 진료과에서 여의사가 수석을 하는 등 규모가 커진 여의사회를 활용할 방안도 연구해 보도록 권하고 싶다. 　

대국민 홍보를 위한 의료봉사활동을 넓히고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 핍박받는 개원가의 적극적인 지원 등 할 일은 태산이요, 시간은 없고 마음만 바쁘겠지만 서서히 빛을 볼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남소자 <서대문 나산부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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