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숙 교수

세금납부는 국민의 기본의무이다. 그리고 국민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공평한 세금 징수와 투명한 사용이다. 그런데 최근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세금을 내는 것이 대하여 억울하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유는 세금이 부당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이런 막연한 불만의 배경이 되는 증거들이 언론에 보도됐다.

대통령직속 위원회 28곳의 올해 예산이 무려 2352억원으로 전년 대비 17% 늘었고 경비의 대부분이 위원회 유지비로 사용되고 있으며 회의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 경영을 잘못해서 발생한 은행의 엄청난 부실을 세금으로 메우는 데 든 돈이 100조원 이상이라고 한다. 이런 기사를 보면서 분노를 금할 수 없는 것은 올해 보건복지부 생명과학 관련 R&D 예산이 예고 없이 500억 이상 삭감되어 졸지에 연구자들이 직장을 잃고 많은 과제들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이공계 몰락을 우려하는 기사는 이제 언론의 단골 메뉴다. 정부는 입만 열면 바이오산업이 장차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새 성장 동력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보건복지부는 재원마련에 대한 뚜렷한 대책도 없이 담배 값 인상만 바라보다가 이에 실패하니 생명과학 연구비를 대폭 삭감했다.

현재 국가지원 연구과제에서 연구원의 월 인건비는 박사급의 상한선을 180만원, 석사 150만원, 학사 100만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보다 월급을 더 주고 좋은 연구자를 유치하려면 규정을 위반하면서 편법을 동원해야 한다. 또한 연구원 대부분이 임시 계약직이므로 과제가 중단 되거나 끝나면 직장이 없어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해외에서 공부한 석학들이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연구 환경과 취업 상황이 이 같이 열악한데 의대만을 고집하는 학생들이나 귀국하지 않는 이들만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최근 포스텍 일등 졸업생이 의대로 편입하여 충격(?)을 주었다는 보도로 언론이 잠시 시끄러웠다. 그러나 이는 늘상 벌어지는 일로 충격은 커녕 뉴스도 아니다. 또한 각 대학의 생명과학부는 의대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로 전락했고 덕분에(?) 많은 우수 고교 졸업생들이 몰리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물론 이공계에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나라의 이공계 수재들이 모두 의학을 공부한다면 의학은 세계 최고수준으로 발전하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이공계가 망하면 의학연구도 같이 망하게 된다. 그 이유는 훌륭한 의학연구에는 훌륭한 이공계 연구원이 같이해야하기 때문이고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의 `고령화'이다. 현재 의전원 입학생들의 평균 나이는 28세이다. 이들이 일반대학 졸업, 군 복무, 의대 졸업, 졸업 후 수련 등, 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나면 이미 나이 40대에 들어선다. 생물학적으로 경제적으로 연구는 꿈도 꾸기 어렵다. 그리고 이들이 연구에 몸담지 않을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이 이공계의 길이 춥고 험난하다는 것을 이미 현장에서 목격하거나 체험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정부가 모든 의대에 의전원으로의 전환을 강요한 명분이 사교육비 절감, 인성교육 강화, 그리고 연구능력 강화였는데 이 목적이 완전 실패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결국 의전원 제도는 이공계와 의료계 모두가 동반 몰락할 위험이 다분히 내재해 있는 제도인 셈이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연구비 자체를 증액해야 한다. 낭비되는 세금의 일부라도 과감하게 이공계에 투자하여야 한다. 우선 연구원의 월급을 현실화 하여 인상하던지 또는 자율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안정된 연구직을 마련하여 우수 인력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R&D 관련 정책 결정이 소수 행정 공무원들의 탁상공론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끝으로 정부가 일방적으로 모든 의대에 강요하고 있는 의전원 제도에 대한 심각한 재고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비전을 가질 수 있는, 그래서 미래의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안철수와 같은 인물들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 같은 상황이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5년 후 심각한 위기가 온다”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발언을 인용할 필요조차 없이 지금 우리나라 생명공학계, 나아가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모든 연구자들의 공통된 심정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을 하여 과학계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려야하며 그 방법론도 다시 점검해야 한다. 낭비되는 수 조 원의 세금의 일부라도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업적을 내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우수 연구 인력들을 지원하는 데에 투자한다면 정치인들이 못해낸 소득 2만 달러의 선진국 진입을 이공계, 의학계가 이루어내는 쾌거를 조만간 이룰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 본다.

박인숙 <울산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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