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태 원장

34년만에 이루어지는 의료법의 개정안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 연관 단체와 의료계 사이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투쟁이 시작됐다.

사회주의의료의 완결판을 만들려는 정부의 일방적인 의료법 졸속개정을 성토하는 의사들의 함성으로 과천벌은 달구어져 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누가 누구를 위하여 의료법을 손질하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국민건강을 위한 법은 커녕 의사들의 의견만큼은 철저히 무시되고 그들에게 족쇄를 채우는 소위 기형적인 `의료인법'으로 둔갑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의사들은 이번 개정안 중 10여개 이상의 독소조항들이 한국의 의료를 하향 평준화시키고 불법 사이비 유사의료행위를 조장하며 국민의료비의 증가 및 국민건강의 훼손을 유발시키는 등 의료현실을 도외시한 것으로 규정하고 원점부터 다시 합리적으로 개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과 4개월의 시간에 10차례 회의를 거치는 동안 의료계 대표에게 토의안건을 회의 전날에서야 제공하고 회의록도 제대로 보내주지 않아 내부검토와 의견수렴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는 점, 회의록 자체와 기타 관련 문건에 의료계 대표가 한번도 서명한 적이 없다는 점, 합의 없이 복지부의 일방적인 의견만 100% 반영된 유령 개정법안 이라는 점에 원천적인 문제가 있다. 일련의 상황으로 보아 세세한 내용은 차치 하고라도 진행과정에서 해당분야의 전문인이나 당사자를 배제하고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그 내용을 회원에게 보고하지 않고 극비로 할 것을 요구했다는 점도 심각한 사안이다.

의료법의 개정을 위한 위원회의 위원 20명 중 개원의는 1명에 불과하여 일선에 있는 의사들의 문제의식을 거세한 상태로 공정한 논의자체도 불가능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데올로기에 모든 것을 묻어 현실분석을 소홀히 하고 자신들만이 선의 집행자인 양 독선과 오만에 빠져 개악되는 의료법이 국민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실용성은 관심 밖으로 밀어내고 지향하는 목표를 향해 권력만능으로 밀어 부치기만 하는 사회주의 장막에 갇힌 자와 진보단체가 문제다.

의사들의 의견을 도외시한 현재의 개정안에 기초한 새로운 의료법이 탄생하게 되면 비전문가에 의한 사이비 진료가 횡행할 것이고 의사들에 대한 구속효과는 더 강화되어 결국 직접적인 최대의 피해자는 국민이 될 것이 뻔하다.

진보는 95%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엘리트계층의 전문인들을 부패한 탐욕주의자로만 몰고 간다. 하지만 대중을 필요로 하는 이슈가 있고 전문가에게 맡겨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이슈가 따로 있다.

한편 의료라는 것이 사회와 환자와 동업인과의 특수한 관계에 있고 의사들은 사회의 변천에 따라 누구보다 높고 훌륭한 윤리의식을 가져줄 것을 요구하는 환자와 사회에 포위되어 운신이 어려운 상태에서 여론몰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권력의 포퓰리즘적 함정에 빠져 있다. 존경은 고사하고 의사의 할복을 `쇼'를 하는 것으로 보는 국민의 시각이나 어른스럽지 못한 비이성적인 행동으로만 치부하는 정부의 태도에 실망스럽다. 의사 폄하 하기 일색인 그들에게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높은 윤리의식에 따른 실천에 상응하는 국민과 국가의 대접을 받은 기억이 없는 것이다. 전문분야에서의 소외와 국민들의 질시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문제에 보다 즉각적이며 적극적인 대응으로 의견을 내며 국민들을 설득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정책적 프로세스를 가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정부와의 원활한 소통도 유지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의사들은 일반노동자들이 벌이고 있는 이익분쟁은 고사하고 자신의 권리에 대한 분쟁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관련정책에 제대로 참여하지도 못하는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을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조종하는 데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진정한 로봇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정책이나 법률의 입안과정에 의사들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봉쇄 당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다른 방법의 투쟁을 시도해야 한다.

아무런 대가도 주어지지 않는 명분과 체면에 갇힌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법의 기본정신은 말살되고 헌법 위에 있는 떼법과 국민정서법이 판을 치고 통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의사들만이 제 정신으로 삶을 개척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권익을 확보하기 위한 정상적인 투쟁이 매도당한다면 시정잡배처럼 침 튀기고 언성을 높여가며 악다구니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낡은 운동화의 헤진 부분을 가죽으로 떼우다 보면 운동화가 가죽신으로 변질되듯 개악되는 의료법을 막지 못하면 괴이한 모습으로 둔갑하여 국민은 소리 없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박현태 <강남 박현태내과의원장>

의사신문  webmaster@doctorstimes.com

<저작권자 © 의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