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표 원장

요즈음 의료계의 첫째 화두인 의료법 개정 문제는 장기적으로 국민의료의 백년대계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사안이지만 올 7월 1일부터 시행예정인 외래 본인부담금 정률제 전환 문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의사로서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에서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의료 수가에도 불구하고 보장성이 낮은 원인은 부실한 보험재정 탓이고, 결국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보험료 탓이다.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건강보험료를 국민의 요구수준에 맞게 인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보험료 인상을 최소화하면서 보장성을 강화하는 두 마리 토끼를 쫓기 위해, 또 국민의료의 내실화를 위해 한정된 의료자원의 합리적인 배분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본인부담비율이 높은 현실에서 국민 모두가 조금씩 더 부담해서 즉 보험료를 올려서 어려운 환자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아랫돌을 뽑아 윗돌을 괴는 식으로 일부 환자의 부담만 가중시켜 다른 환자를 지원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많다. 당장 개원가에 닥칠 외래환자의 감소, 본인부담금 징수에 관련된 환자와의 마찰 등은 차치하더라도 소액진료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이 제도가 국민의료에 올바른 방향인지에는 의문점이 많다.

첫째로 문제점투성이인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에서 많지 않은 장점중의 하나는 의료기관에 대한 용이한 접근성이다. 이 제도는 병원 접근성을 악화시켜 작은 병이 큰 병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증 질환의 대표로 여겨지는 감기도 중증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고, 많은 중증 질환이 감기와 유사한 증상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임상의들은 우려가 많을 수밖에 없다. 당뇨나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의 관리도 대부분 외래진료를 통해 이루어지며, 본인부담 증가로 관리가 소홀해질 경우 예방 가능한 합병증의 빈도가 늘어나 국민건강은 물론 보험재정도 악화될 수 있다.

둘째로 당뇨, 고혈압, 신경계질환 등의 만성질환처럼 소액진료를 거의 평생 받는 환자의 전체 부담은 고액진료를 받는 환자의 부담에 비해 적지 않다. 대부분이 고령이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만성질환 환자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보장성강화의 본래 목적과도 맞지 않고, 장기적으로 의료비용이 많은 환자의 부담을 가중시켜서 일시적 또는 단기적인 고액진료를 지원하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셋째 정부의 의도대로 경증 질환에서 보험재정이 절약될지도 의문이다. 현행 정액제에서도 총진료비가 만원 이하일 경우 본인부담금이 오히려 높고 만원에서 만 오천원 사이의 경우가 상대적인 혜택을 받는다. 외래 진료의 절반가까이가 이 사이에 있는 현실은 최소비용을 추구하는 환자와 의사의 적응이라 할 수 있다. 제도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의료행태의 변화를 가져와 재정 절감효과가 예상에 못 미칠 가능성이 높다.

넷째 한정된 재정을 효율적인 부분에 집중할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 배분 원칙은 감성적 또는 인기에 영합하는 이유가 아닌 합리적인 근거에 의해야 한다. 경제활동에 곧 복귀하는 경증환자나 합병증이 예방 가능한 만성질환 환자에 대한 지원보다 식대나 말기환자들의 단기간 수명 연장을 위한 치료 등 정부의 여러 가지 보장성 강화 부분의 지원이 더 비용효과적인지 여부는 검증이나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끝으로 국가적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에서 의료비 배분의 최종결정권은 조합원 즉 국민의 몫이다. 소액진료를 받는 경우에는 본인이 좀 더 비용을 부담해서 고액진료를 받는 환자를 도와주겠다는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보험료 인상의 경우처럼 국민의 대부분은 어려운 환자들의 지원에 감성적으로는 공감하지만 스스로의 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최근 한 여론조사의 결과처럼 반대하는 국민이 60% 이상이라면 이 제도의 성공적인 실행은 어려울 것이다.

당국이 많은 부작용과 국민의 반발이 예상되는 외래 정률제 전환 방침을 취소하기를 촉구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적정한 부담과 그에 상응하는 적정한 혜택이라는 당연한 원칙을 지키는 정책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이원표 <노원 이원표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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