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숙 교수

지금 의사사회는 의료법 개악으로 인한 `비상사태'라고 생각된다. 이 법이 원안 그대로 통과된다면 이미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의사의 진료권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나빠질 것이다. 즉 의사들의 투약 권한이 축소되고 치료도 보건복지부가 만든 지침대로 해야 할지도 모르며 심평원과 보험공단의 요구를 그대로 따라야 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간호사는 `간호사 진단'이라는 진료권(?)을 가질지도 모르며 모든 개원의들은 (간호조무사가 아닌) 간호사를 고용해야한다.

부끄러운 소모전 끝내고 대동단결을

순진한 생각으로 혹 떼려다 악성 혹을 여러 개 더 붙인 셈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 한 가지 불미스러운 움직임이 있다. 바로 소아청소년과로의 개명에 반대하는 내과개원의들의 움직임이다. 지금 파이 자체가 크게 작아질 위기에 처해있는데 남은 파이를 서로 더 많이 차지하겠다고 다투는 모양새가 매우 안 좋아 보인다.

필자를 포함, 대부분의 의사들은 작년에 국회에 소아청소년과로의 명칭개정관련 법안 상정이 마지막 순간에 취소되는 와중에 일어난 사건들의 내막은 모른다. 단 분명한 사실은 이 일로 인하여 소아과와 내과 의사들 간에 메우기 힘든 깊은 골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의사단체와 의협회장은 도덕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받았고 많은 의사들 심지어는 국회로부터도 신뢰를 잃게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상 초유의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으로 노인환자와 만성병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반면에 어린이환자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들의 의료기관 이용률은 원래 매우 낮다. 따라서 `청소년'이라는 명칭이 소아과에 붙건 내과에 붙건 그 효과는 극히 미미할 것으로 짐작된다. `청소년'이라는 이름이 소아과 개원의 간판에 들어감으로써 내과 개원의의 수입이 얼마나 감소할 지, 또는 소아과 개원의의 수입이 얼마나 증가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단언컨대 지금 의사들 모두의 사활이 걸린 일을 제쳐두고 서로 다툴 정도로 큰 비중은 아닐 것이다.

의료법 개정을 둘러싼 지금의 상황은 제2의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모든 의사들이 똘똘 뭉쳐 보건복지부가 일방적으로, 현 정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일념으로 급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개정안을 반대하는 것도 힘겨운 판국에 전문 과목 명칭 문제로 의협 안에서도 가장 큰 단체가 협회 탈퇴라는 극단적인 위협까지 하는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로 의사단체가 단합하지 못하여 개정안을 막지 못한다면 다른 직능 단체들은 어부지리로 더 큰 파이를 얻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의사들이 입을 피해는 제쳐두고라도 더 큰 문제는 의료의 질은 떨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모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지 않아도 일반인들의 의사에 대한 시선은 전혀 곱지 않으며 더 걱정스러운 것은 앞으로도 개선될 희망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의사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상황이 지극히 나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의사단체들이 내분과 분열로 이를 외면하고 이번에도 막지 못한다면 국민과 국가의 미래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의사들도 분초를 다투고 공부하고 노력해도 어려운데 지난 수 년 동안 과 명칭문제로 이러한 소모전을 계속하면서 날을 지새우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직역간의 이기주의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리더십의 부재다.

죽기를 각오로 의료법 개악저지해야

지금 이 법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앞으로는 의사는 청진기만 대고, 약은 약사들이 책임지고, 간호사도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세상이 될 지도 모른다. 지금의 학생이나 젊은 의사들이 훗날 우리들의 무책임과 무능함을 얼마나 비난하고 원망할지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지금 상황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급박하다. 지금 당장 부끄러운 소모전을 끝내고 의사들 모두가 합심하여 의료법 개악을 막기 위하여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박인숙 <울산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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