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일 총장

이퇴계 선생이 입고 다녔던 도포와 닮은 교육과정을 두고 흔히 `누더기 교육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함께 의논·원칙존중 절차없어 겉돌아 우리나라 의사 양성의 기반인 한국 근대의학교육은 서양의학에 기원하며, 근거기반교육(EBM)체계를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현행 교육과정이 과연 미래의 의사가 되는 학습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또 교수들이 이에 따라 가르침을 이끌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해답함으로써 교육 활성화의 실마리를 찾을 때를 맞았다. 한마디로 의과대학이든 의학전문대학원이든 누구를 위해 21세기의 의료요구에 합당한 교육계획을 편성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재검토할 때다.

많은 대학들이 실용주의적이고 근거중심적이며 과학적 논리에 바탕을 둔 실사구시형(實事求是型) 교육을 편성하기를 기대한다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폐습은 교수중심교육, 학생들의 피동적인 학습참여로 인한 `수요자 소외형 교육'이다.

지난 20년을 되돌아보면 전국의 의과대학이 경쟁이나 하듯, 2년에 한 번 씩 학장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새로운 교육과정이 추가됐다. 외면적으로는 학생들의 학습내용이나 방법이 학습자 중심의 능동적인 학습, 미래지향적 교육을 표방했다. 통합교육, PBL, 임상수기 훈련, 의사소통, 인문학의 강조, 직업적 전문성, 핵심교육과 선택형 교과목제, EBM, 서브 인턴제의 도입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바뀌었다고 해서 무엇을 향해서 변한 것인지 알기도 어렵거니와 그 목적을 잊은 채 수업이 진행되는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음을 본다. 바꾸어 말해서 교육목적을 손질하면서 교육계획을 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바꾸기 위하여 새로운 유행을 따라 `삽입형 교육계획'을 만들었을 뿐이다. 결국 교육의 근본을 빠트리고 만 것이다.

학생중심교육을 위하여 자율적 학습을 강조하며, 졸업 후 독자적 학습이나 동료간 협동정신을 기르기 위하여 PBL 과정을 신설하고, 내용의 중복을 피하고 추론과 실제를 연계시키기 위하여 장기중심 통합교육을 개발하였다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장기 중심으로 통합은 이루어졌지만 종전의 교실간 세력싸움을 남겨둔 채 관련 교과목을 모아놓은 연합교육을 한 꼴이 되고 말았다.

서브인턴을 한다고 하면서 `교수의 진료 따로, 학생들의 참여 임상실습 따로'식의 운영은 여전하다. 때문에 학생들의 실습은 병원 실습현장에서 어깨너머 실습이나 미니 강의 등으로 겉돌고 있다. 이에 더하여 교수들은 강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그리고 시험을 쳐야 학생들이 공부한다는 생각에 학생들의 학습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교수 자신의 전공분야가 핵심교과목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대학의 체계적인 교육접근이 도전을 받고 있다.
 
총괄적인 이해보다는 세부전공별 교육내용의 심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건사한 이름과 겉으로 보기 좋은 교육계획이 만들어졌지만, 함께 의논하고 원칙을 존중하는 절차의 묘미가 생략된 누더기 교육과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처럼 누더기 교육과정이 되어버린 원인은 ① 학생교육에 대한 교수들의 무관심 ②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간섭 받기 싫어하는 독자적 수업의 선호(편성절차 지키기에 대한 협동정신 부재) ③ `교수가 가르쳐야 학생들이 배운다'는 고착된 사고 ④ 교육계획에 대한 학생들의 참여 무시 ⑤ 학습자 성적이나 졸업 후 진료 등에 대한 추적 미흡 즉 학습 결과를 제대로 챙기지 않는 일 등이다.

전교수 참여 충분한 검토후 개편해야 무엇 때문에 그리고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총체적으로 충분히 검토한 후에 그리고 전 교수들의 참여 속에서 교육과정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시작은 어떤 의사를 만들 것인가에 맞추어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일이다.

이퇴계 선생이 입고 다녔다는 누더기 도포의 참 뜻은 외관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배움에 뜻을 둔 의연함에서 찾는다면,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후에 각 대학의 교육계획이 이루어져도 좋을 것이다. 교수들은 명분을 소중히 여기는 집단이다. 또 수업의 효과는 남이 시켜서 하기 보다는 스스로 활용하는 과정이 분명하도록 도움을 줄 때 비로소 나타난다. 미래의 의료를 담당할 후학들을 위하여 교육과정 개선의 진수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김용일 <을지의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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