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의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이 우리나라와 의료 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미국식 총액계약제를 도입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27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건정심)에 청구명세서 기반의 건별 심사방식에서 ‘가치에 기반한(value-based) 심사·평가체계’로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주내용으로 하는 ‘건강보험 심사•평가체계 개편 방안’을 보고했다.

이에 바른의료연구소(이하·연구소)는 개편안이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일 뿐만 아니라, 현행 행위별 수가제에서 가치기반 지불제, 묶음 지불제, 에피소드 기반 지불제 등의 포괄적 지불제로 전환하기 위한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안이며, 이를 기반으로 인구기반 지불제와 총액계약제로 나아갈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측은 심사방법을 검토한 것일 뿐 검토는 이뤄지지 않았고 총액계약제와는 관계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심사·평가체계개편협의체 구성원인 서울의대 김윤 교수도 개인 SNS를 통해 “우리나라에 총액계약제가 도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제가 도입을 주장할 일도 없다”며 바른의료연구소에 대해 “아무거나 총액계약제에 갖다 붙이는 공포마케팅 좀 그만했으면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연구소는 “가치에 기반한 심사•평가체계로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주내용으로 하는 건강보험 심사•평가체계 개편 방안은 다름 아닌 미국식 지불제도 개혁안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이며 그 종착역은 바로 총액계약제와 인구기반지불제”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미국과 한국의 의료 환경과 제도는 천양지차이다. 무엇보다 가치기반 지불제도에 근거한 미국식 지불제도 개혁안이 미국 내에서도 그 효과를 확실하게 입증했다는 증거도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연구소는 “만약 미국식 대체지불 제도를 대거 도입한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이 실행된다면, 대한민국 의료는 파국에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며 “이는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외국 의료제도 도입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보건복지부나 소위 의료관리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국내 현실은 별로 고려하지 않고, 외국, 그것도 의료비 지출이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의 의료제도를 무작정 도입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구소는 이번 개편안이 바로 ‘문재인 케어’ 시행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 급증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그러나 문재인 케어는 오로지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제고하여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에서 비용효과성이 없는 의료행위도 급여화하겠다고 한 것으로 문재인 케어 자체가 가치기반 의료결정과는 완전 상충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가치기반 지불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문재인 케어의 심각한 부작용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식 가치기반 지불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는 것.

연구소는 “심사·평가체계 개편안은 의료계를 옥죄는 심각한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을 목표로 하고 있음에도 의협은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전면 급여화가 아닌 필수의료 중심의 점진적, 단계적 급여화를 이뤄냈다고 자위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의사들은 정부도 그렇지만 의협에도 기대할 수 없는 참으로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자조섞인 읊조림을 했다.

배준열 기자  junjunjun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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