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심각해져만 가는 항생제 내성 관리를 위해 보건복지부 내 전담 관리부서 신설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와 주목된다.

대한항균요법학회(회장·김성민)는 항생제 내성 극복을 위한 ‘2018 항생제 내성 예방주간 전문가 포럼’을 13일(화) 오후 2시에 개최하기에 앞서 오전 10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배현주 항생제관리분과위원장(사진, 한양의대 감염내과 교수)은 “우리나라는 하루 1,000명당 34.8명(OECD 평균 21.1명)이 항생제를 처방받고 있다”며 “항생제 오남용은 항생제 내성균 출현을 초래하는 만큼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은 2020년까지 감기에 처방되는 항생제를 50%, 전체 항생제 사용을 20%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급성상기도감염(감기)에 대한 병원별 항생제 처방률을 2006년부터 공개한 결과 ‘급성상기도감염’ 항생제 처방률이 2006년 49.5%에서 2016년 35.6%로 줄었으나 ‘급성하기도감염’은 2006년 21.7%에서 2016년 35.8%로 늘어났기 때문에 정책이 전체 호흡기질환의 항생제 처방을 줄이지는 못했고 다만 공개되는 상병명만 의사들이 회피한 것으로 평가한다.

항생제 사용의 적절성은 보험청구상병을 기반으로 평가하는 것이 충분하지 못하므로 대한감염학회, 대한항균요법학회는 질병관리본부와 협력하여 올해 전국 20개 병원의 임상정보를 기반으로 한 ‘항생제 처방 적정성 평가 사업’을 진행 중이다.

배 교수는 무엇보다 “항생제 사용량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의사만 통제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며 “항생제 사용 시 환자의 91%가 비사용 시보다 만족하고 의사도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을 시 진료 시간이 40% 이상 더 소요되는 조사 결과가 있다”고 소개했다.

즉, 우리나라 의사들만 부도덕해서 항생제를 많이 처방하는 게 아니라 저수가로 인한 ‘박리다매’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의료현실에서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이야기다.

더 나아가 배 교수는 항생제 사용량 감소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며 보건복지부 산하 ‘항생제 전담관리부서’를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배 교수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전문가를 중심으로 ‘항생제 내성 임상 표준센터(AMR Clinical Reference Center)’를 조직, 연간 약 27억 원의 예산으로 항생제 사용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항생제 적정 사용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영국 보건국도 적정 항생제 사용 교육 프로그램과 처방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항생제 사용량을 줄인 의원에 인센티브를 지급하여 이를 통해 2014-2015년 사이 의원급 4.3%, 병원급 5.8%가 항생제 사용 감소 효과를 거둔 바 있다.

배 교수는 또 국내 의료기관의 부적절한 항생제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항생제 스튜어드십’을 위한 전문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나라 병원의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적정 항생제 사용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은 감염내과 전문의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나 이들의 수가 대개 병원당 1-2명으로 충분하지 못하고 감염병 환자 진료, 타과 발열질환 자문, 병원감염관리 업무 등 업무를 겸직하고 있으므로 병원의 항생제 스튜어드십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배 교수는 “항생제 적정사용은 항생제 내성을 예방할 뿐 아니라 개별 환자의 항생제 치료의 성과를 개선시키므로 환자의 안전에도 지대한 영향이 있기 때문에 항생제 스튜어드십을 지원할 수 있는 전문인력(감염병, 약제, 미생물, 의료정보 전문가)이 국가적으로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태 파악조차 안되는 중소병원, 장기요양병원 감염관리 지원 필요

내성균 전파 차단에 있어서 중요한 거점인 중소병원, 장기요양병원의 감염관리 지원 필요성도 언급됐다.

가천대 길병원 엄중식 감염내과 교수는 “급성기 중증환자를 진료하는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이 가시화 된 다제내성균 환자의 치료와감염관리로 씨름을 하고 있다면 내성균 확산의 중요한 장기적 거점이 되는 중소병원이나 장기요양병원은 내성균 보균의 현황조차 파악하고 대처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국내 역학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미 내성균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고 토착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일차의료기관, 중소병원 장기요양병원의 감염관리를 위한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며 “다제내성균 감시 체계 구축을 위해 배양검사와 유전자 검사(PCR: Polymerase Chain Reaction)에 대한 재정적 지원과 충분한 격리실의 운영을 위한 건강보험 급여가 현실화 되어야 하며 다제내성균 보균 환자 정보를 의료기관이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 다제내성균 보균 환자의 전원이나 이송과정에서 선별적인 격리와 지속적인 감염관리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엄 교수는 “기존의 급성기 중증환자 진료를 하는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에도 내성균 환자 감염관리를 위한 시설 개선과 인력 확충이 시급하며, 다인실 정책의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라며 “우리나라도 해외 선진국처럼 1-2인실 정책으로 선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범부처간 통합 인프라 구축해야

범부처간 통합적 인프라 구축 필요성dl 제기되며 원헬스 항생제 내성균 사업에 대한 소개도 있었다.

연세의대 진단검사의학과 정석훈 교수는 “원헬스 항생제 내성균 사업은 항생제 내성 문제가 사람-동물-환경 전체의 문제라는 이해를 기반으로 항생제 사용량 조사와 사람-동물-환경 간 내성기전과 전파 규명을 위한 R&D 사업으로서, 5개 부처(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검역본부,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가 참여하는 다부처 공동기획사업으로 예산심의를 통과해 2019년부터 본격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는 “항생제 내성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람-동물-환경 전체를 대상으로 항생제 사용량을 줄이고 내성균 확산을 방지하는 원헬스 개념의 접근을 위해 우선 예산, 운영체계, 조직, 인력을 포함하는 범부처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현재 보건복지부만이 1개과(질병관리본부 약제내성과)를 배치하고 있고, 다른 부처에서는 연구직 1-2명만이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므로 대대적인 보강과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균요법학회 김성민 회장(사진, 인제대 해운대백병원 감염내과 교수)은 “항생제 내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항생제를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도록 의료인과 일반인 대상 교육을 통해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한편, 철저한 개인 위생을 통해 내성균 전파 차단을 독려해야 한다”면서 “비단 의료계 뿐만 아니라 농〮축〮수산, 식품, 환경 분야를 포괄하여 항생제 사용을 줄이고 내성균 확산을 방지할 수 있도록 상호 협력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배준열 기자  junjunjun2015@naver.com

<저작권자 © 의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