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간 묵묵히 전문가를 배출해 내며 학술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협회가 있어 눈길을 끈다. ‘눈의 움직임으로 마음의 병을 고치는 방법’을 국내에 전수하고 있는 한국EMDR협회가 그 주인공이다.

박용천 한국EMDR협회장(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EMDR은 안구운동을 통해 교통사고나 전쟁, 강간, 강도 등 큰 트라우마를 지우개 지우듯이 지워버리는 치료”라며 “안구운동이라는 말이 조금 우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효과가 좋다”고 밝혔다.

1987년 심리학자인 샤피로 박사가 눈을 움직이면 괴로운 생각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EMDR(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이 정신과 영역으로 도입됐다. 이후 정신의학 분야 교과서에도 EMDR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가장 최적화된 치료법으로 등재되며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도 지난 2002년 도입돼 정식 치료법으로 인정받았다.

EMDR의 핵심은 안구운동을 비롯한 양측성 자극이다. 규칙적으로 양측성 자극을 주면서 부정적인 기억을 떠올려 처리되지 않았던 기억을 재처리하는 것이다. 1회에 최소 90분에서 2시간 정도의 치료시간이 소요된다.

박 회장은 “트라우마 같은 큰 충격을 받으면 머릿속에 얼어붙어 없어지지 않는다. 마치 헛바퀴 돌 듯 뇌에 맴돌게 되는데 양측성 자극을 통해 처리되지 못한 기억을 다시 처리할 수 있도록, 자연 치유될 수 있도록 돕는다”며 “그동안 난공불락 수준이었던 PTSD의 돌파구를 뚫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2003년 창립된 EMDR협회는 지난 15년 동안 전문가를 배출해 내며 국내 보급에 힘쓰고 있다. 매년 2회 워크숍을 열고 트레이닝을 진행하며, 수료한 이들에게 EMDR 치료자격증을 수여한다.

박 회장은 “스승님인 김광일 교수의 제안으로 2002년 미국 교환교수 당시 EMDR을 배워오게 됐다. 당시만 해도 검증되기 전이라 좀 망설여졌지만 효과를 확인하고는 국내에 전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2003년 몇몇 사람과 함께 EMDR 협회를 창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EMDR 워크숍은 참가 자격이 까다롭다. 정신의학과 전문의와 레지던트 3·4년차, 정신보건 전문가(정신보건전문요원 1급), 심리전문가 등으로 제한돼 있다.

박 회장은 “처음 국내 보급할 때부터 소수정예로 가려고 했다”며 “그동안 한의사나 가정의학과 등에서 요청이 많았지만 EMDR의 치료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격을 제한했다. 지금도 주로 정신의학과 의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정신보건법이 바뀌기도 했고, 지역사회에 정신건강요원 수요가 많아질 것 같아 문호를 더 넓혀야 하지 않나 고민 중”이라며 “외국에서는 자격 조건 없이 개방했더니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나 법적 문제까지 일어나고 있다. 최소한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들로만 구성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참가비 또한 만만치 않다. 전공의나 군의관, 공보의는 90만원, 그 이외에는 120만원으로 2박 3일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하고도 적지 않은 금액이다.

박 회장은 “EMDR 교육을 위해서는 강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지난 10여 년 동안은 이스라엘에 있는 공인치료사를 초청해 진행했다. 처음에는 치료법, 외국 강사 초청, 동시통역 등으로 강의료가 160만원”이라며 “당시 의학계에서 100만원이 넘는 돈을 내고 배운다는 건 획기적 발상이었다”고 했다.

그는 “최근 2~3년 사이에는 한양대구리병원 김대호 교수와 한양대병원 김석현 교수 등 5명이  국제 EMDR 협회 공인 트레이너 자격 획득해 자체적으로 기초수련 과정 및 전문 교육이 가능해졌다”며 “덕분에 참가비 역시 조금 낮아졌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협회 차원에서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펼치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소위 ‘아무나’ 모여드는 것을 막고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박 회장은 “워크숍은 흥행이나 돈벌이 목적이 아니다. 배우겠다고 오는 사람을 거절하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정통으로 가고 싶다”고 전했다.

EMDR은 트라우마 환자에겐 매력적인 치료법이다. 하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 사용하기에는 애로사항이 많다. 한 회기 치료시간이 적어도 90분에 달하는 만큼 수가 보전 등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박 회장은 “EMDR은 약이 아니라 치료자와 환자 두 사람이 대화하면서 치료하는 방법이다. 그야말로 기계가 대신해줄 수 없고 손품 파는 수공예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동차보험에서 때로는 보상 안 해주기도 하고 수가를 삭감하기도 하는데 건강보험에서 신의료기술로 인정된 만큼 상응하는 치료비를 보장해줘야 한다”며 “물론 꾀병환자들도 많지만 정작 치료가 필요한 환자도 많다. 약으로만 치료하면 시간이 무지 많이 걸리는데 EMDR로 치료하면 오히려 효과도 크고 치료기간도 줄어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장기적으로 보면 보험회사나 환자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전했다.

이지선 기자  sundream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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