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문제가 터지면 일단 꼬리자르기식 책임전가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얼마간 방치했다가 불쑥 돈폭탄을 터트리거나 유례없는 파격 조치를 하지만 별 효과는 거둘 수 없다. 세월호, 메르스 등으로 익숙한 패턴인데, 이를 두고 ‘문제 해결 의지 없이 생색내기에만 집착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한다. 그런데 정부가 이번에 또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최근 두 살배기 아이가 응급수술을 받지 못하고 13개 병원을 전전하다 사망한 사고가 발생해 논란이 되자 정부가 전북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전남대병원·을지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지정취소를 검토한다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당시 전원요청을 했던 전북대병원 관계자들을 불러 당시 상황을 확인했고, 곧 위원회를 소집해 지정취소 등을 포함한 엄중 조치를 한다고 하는데 과연 이런 식으로 해결될 일인지 의문이다.

정부는 문제의 본질을 망각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수술할 의사가 없어 발생한 비극인데 대체 병원더러 뭘 어쩌란 말인가? 정작 이번 비극을 초래한 장본인은 젊은 의사들이 중증외상 분야를 기피할 수밖에 없게 만든 정부다.

중증외상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 고도의 숙련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 나라에는 이런 보건의료시스템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와 심사평가원, 건보공단이 건강보험 수가를 완벽히(?) 입맛대로 묶어놓은 덕분에 의료진이 아무리 교대·초과근무를 반복하며 환자를 살려봤자 적절한 보상은커녕 손해만 더 발생한다. 외상외과는 병원의 손해만 눈덩이처럼 불게 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다.

혹시 환자가 사망하거나 잘못되기라도 하면 의료진은 온갖 욕을 먹고 멱살잡이를 당하기 일쑤며 때로는 수억 원대의 소송에 휘말리기도 한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일명 ‘신해철법’까지 시행돼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 등으로 의사들을 더 옥죄고 있다.

최근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2살 아이도 당시 교통사고로 골반과 발목에 중상을 입어 긴급히 미세접합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병원들에 수술할 수 있는 의료진이 없었다. 미세수술은 매우 오랜 시간 동안 고도의 정교함을 요하는 수술이지만 수가가 턱없이 낮아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학병원에서 명맥이 끊겼다.

정부가 1300억 원의 재정을 쏟아 부어 전국 41개 의료기관을 권역응급센터로 지정·운영해봤자 당장 눈앞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살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의료계는 오래 전부터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경고해왔다. 더 이상의 비극을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응급실과 외과계열 기피과에 재원을 더 투자하고 세계에 유례가 없는 우리나라 특유의 응급실 과밀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전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의사들의 희생만 강조할 것인가?

배준열 기자  junjunjun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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