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수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전문위원

대한의사협회는 정부 지원 없이 의사회원들의 뜻과 회비로 운영되는 이익집단이다. 실체 모호한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관변단체가 아니다.

이 사회 보건의료 유지 발전을 위한 희생이라면 이미 수십 년째 저수가, 관치 압박 속에 충분히 당하고 있다.

전공의 시절, 의약분업을 강제 도입한다는, 당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했던 사태에 참을 수 없었고 혈서를 쓰며 울분을 토하다가 의사단체 일들을 시작하게 되었다.

황당하게도 환자들에게 좋아진 것 없이 돈 더 들고 불편한 채 특정 집단 배 불리고 우리 의사들을 패배감에 젖게 만드는, 아직도 이해 불가능한 의약 분업제도는 10년이 훨씬 넘게 당연한 듯이 굴러 가고 있고, 이제는 그나마 다 찌그러진 우리 의사들의 밥그릇을 타 영역이 대놓고 치고 들어와 빼앗겠다는데 대법원까지도 그 더러운 손들을 들어주고 있다. 배불러 터진 밥그릇 싸움꾼들로 몰다가도 자기 자식이 그 길에 들어서면 자랑을 하는, 희한한 여론을 등에 업고 수많은 집단이 우리를 위협하는 가운데, 상식의 최후의 보루여야 할 법에서 우리 현대의학은 점점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가 안이하게 대처하는 가운데, 다른 이익 단체의 의뢰를 받은 대형 로펌의 눈부신 활약 속에 최고법원의 판결로 안면미용술을 치과에 나눠 주게 되고 나니, 이제는 대법원 판결에 용기 백배한 전통 의술사들이 모든 걸 나누자고 덤벼들 것이 뻔한 판에 또 다른 비극적인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급여·비급여 항목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신 것 외에 무슨 큰 죄를 짓지도 않은 개원동료의사 한 분이 현지실사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비통한 선택을 하셨다는 뉴스. 더한 것은 의사동료들이 그 분을 기리고 강압적인 공권력에 항의하기 위해 행동을 하겠다고 나서는 차에, 그분이 잘못이 많았고 조사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투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기가 막히다. 이제 우리 의사들, 특히나 원장 혼자 모든 일을 다 하고 책임지고 보호할 테두리 없는 개원의들은 각자도생만 남은 것인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제도가 압박하고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 과 영역까지 다 무너지고 모두가 비만과 도수치료에 매달리면서 눈치 빠른 동료들만 살아남는 것이 과연 우리의 나아갈 길인지 회한이 몰려온다.

우리의 이익만을 위한 독점이 아니건만 왜 옳은 주장을 하면서 정부와 여론 눈치를 그리 살피려 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과학을 기반으로 한 근거중심의 현대의학을 유지 발전 시키고, 그러기 위해 정상적인 보상체계가 필요하며 이는 곧 비용증가, 국민과 정부의 부담증가가 답인데, 이를 가장 잘아는 우리가 나서지 않고 공익, 공공재라는 관념에 매달려 여론이라는 눈치나 보고, 시키지도 않는 회원 뒷조사나 하고, 애매한 일들이 사실로 규정되어 보도되는 등 분노한 회원들을 자극이나 하고 있으면 도대체 어떤 문제가 해결이 될지 답답하다.

3대째 한 동네에서 의업에 종사 하다 보니, 의사들을 보는 환자분들의 시각은 과연 어떤 것인지 몸으로 느끼게 된다. 아플 때 찾아오고 거기에 도움을 드리면 진심으로 고마워 하시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진료실 안에서의 일이다. 나가면 의사는 의사이고 내 주머니 사정은 다른 이야기일 뿐.

의료계 정상화를 위해 수가를 정상화 하고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정상으로 만들어 보자는 데에 있어서는, 돈 더 쓰게 만드는 집단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공익단체의 허울을 쓰고 여론을 우리 쪽으로 돌려 제도를 개선해 보겠다는 것은 망상일 뿐, 정부지원 없이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이익단체라면, 또 우리의 주장이 옳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 정체성을 찾는 것이 오히려 공익에 부합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보다 잘산다고 하는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지금의 의료제도는 결국 정부, 정치권의 압박 속에, 우리 의료공급자들의 일방적인 손해 위에 쌓아 올려진 모래성일 뿐, 그 불안정한 시스템이 어찌 다음, 또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을까?

거의 대부분 민간투자로 이루어진 보건의료 인프라를 왜 정부 뜻대로 운영하는데 우리는 끌려만 가고 있는지, 불만은 많으면서 왜 제대로 항의표현도 못하고 있는지는, 의료단체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소위 의료계 지도자들이 통렬히 반성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인 조사에 시달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동료를 오히려 힐난하고, 그 회원을 괴롭힌 자들을 대변하는 듯한 보도가 나오는 것은 실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산적한 수많은 우리 의료시스템의 문제들, 하나씩 해결할 시간도, 능력도 되지 않는다. 얽혀버린 매듭은 과감하게 한칼에 끊어 버리고 다시 이어 놓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방안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안산의 원장님이 평소 얼마나 협회 일에 협조했고 지역 의사회에 참여했는지, 그 분의 진료과정에 잘못을 했는지 안 했는지, 그걸 도대체 왜 우리가 따지고 앉아 있어야 하나? 우리가 동료의사로서 봐야 할 사실은 한 가지. 그 분이 원하지 않는 현지실사 후에 괴로워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사실뿐, 그리고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렇게 당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사실뿐.

강성노조를 가진 공장근로자들의 평균연봉에나 가까운 수익도 안정적으로 올리지 못하고 빚더미 위에 살고 있는 주제에, 공부 몇 년 더 했다고 점잖게 욕 먹지 않으면서 어찌 해보겠다는 망상은 이제 좀 거두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 정말 옳은 일을 위한 행동은 결과가 모든 설명을 대신한다.

분노와 허탈감속에 키보드나 두드리다 일어나는데, 회원들이 내 주신 회비로 회의한다고 모여서 먹은 도시락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한다. 좌시하지 않겠다는, 우리끼리 보는 선언문 말고 다른 속 시원한 사이다가 필요하다. 정말이지 무엇이 중요한데….　

의사신문  webmaster@doctorstimes.com

<저작권자 © 의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