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실린 배양균 다시 만들려면 꼭 살아남아야”

“야, 불고기다!”

오늘 저녁은 윤이가 좋아하는 불고기란다. 불고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음식이야. 참, 불고기는 드물게 아직도 남아있는 고구려 음식이라고 해. 고구려 때 맥적(貊炙)이라고 불렀는데, 옛날 책에 중국에까지 유행했다고 하니 그때부터 음식 한류가 시작되었는가 봐.옛날에는 불고기를 `고기를 넓게 저몄다'는 뜻으로 너비아니라고 불렀어.

“불고기는요?”

너비아니를 `불고기'라고 부른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아. 본래 우리나라 북서쪽 지방의 사투리였다고 해. 몇 십 년 전부터 서울에서 육수 불고기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널리 퍼져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되었단다.

“아빠, 다른 나라엔 불고기 같은 것은 없어요?”

음∼, 우리나라 불고기 같은 것을 넣어 파이를 만드는 나라가 있어. `고기(미트) 파이'라고 부르는데, 글쎄, 맛있는 불고기를 바로 먹지 왜 파이에 넣어 먹을까?

고기 파이를 간식으로 먹는 나라는 바로 우리가 흔히 호주라고 부르는 오스트레일리아란다. 오늘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첫 번째 노벨의학상을 받은 하워드 플로리가 어떤 의사인지 얘기해 줄게.

“좋은 공기를 마시면 곧 병이 나을 거야.”

아내가 결핵이 심해지자 어깨를 토닥거리며 사내가 말했어. 그는 영국에서 잘나가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1882년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는 배에 아내를 데리고 탔어. 그런데 약이 제대로 없던 때, 좋은 공기만으로 병을 낫게 하는 것은 무리였지. 아내는 시름시름 앓더니만 네 해 만에 그만 사내를 홀로 두고 떠나버렸어. 사내는 널따란 들판에 나가 울부짖었어.

“난 아내를 그리며 평생 혼자 살 거야.”

그러나 영국의 식민지였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잘 생긴데다 큰 출판사를 가지고 있던 젊은 사내를 여자들이 놔두질 않았어. 결국 얼마 안 되어 예쁜 여자와 다시 결혼했단다.

“나빠요.”

아빠가 생각해도 그래. 아빠 같은 남자는 참 드물어, 하하∼.

남자는 새로운 아내와 무려 네 명의 어여쁜 공주를 낳았는데, 옛날엔 왜 끝까지 아들을 낳으려 했는지…. 마지막에 겨우 똘똘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단다. 그 꼬마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하워드 플로리야.

꼬마는 아빠만 빼고 모두 여자뿐인 집에서 누나들과 여자 옷을 입고 자라 어리숙했대요. 그러나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그때부터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어 아빠는 벽을 모두 상장으로 도배했대. 꼬마는 일등 말고는 할 줄을 몰라 누에고치에서 실을 빼내듯이 상을 모조리 차지한다고 친구들이 `풀솜(floss)'라는 별명을 붙였대요.

“누에?”

뽕잎 먹고 사는 벌레 말이다. 옛날에 좋은 옷은 어느 나라에서든 주로 누에에서 뽑아낸 실로 만들었거든…. 그는 중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공부를 잘해, 우수한 성적으로 의사가 되었어. 그 다음엔 장학금을 받고 영국으로 공부하러 가게 된단다. 어디로 갔느냐하면 말이다. 하비라는 의사 알지?

“아빠, 윤이 알아요!”

그래, 피가 심장에서 나와 온몸을 돌아다닌다는 것을 밝혀낸 의사 말이다. 그 의사가 있던 옥스퍼드 대학이야. 그때는 몇 달 배를 타야 겨우 영국에 도착했는데, 그동안 배에서 의사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돈을 벌었다니 얼마나 성실한 사람이니? 아빠는 성실한 사람을 좋아해.

처음 플로리가 영국에서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았어. 잘 사는 사람들이 다니는 대학에서는 그를 `식민지 촌뜨기'라고 수군거렸어. 하지만 성실한데다 플로리의 뛰어난 실력이 어딜 가겠어?

“저렇게 쉬지 않고 일할까?” 또는, “어떻게 날마다 톡톡 튀는 생각을 할까?”

그는 자신의 말대로 `식민지 촌뜨기의 투박한 배짱'으로 밀고나가 마침내 옥스퍼드 대학의 병리학 우두머리가 되는 기적을 낳았어.

플로리가 우두머리가 되자 조용했던 대학이 시끌벅적해졌어. 그는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넘어온 체인과 힘을 합쳐 세균을 죽일 수 있는 물질을 찾기 시작했단다.

“이걸 한번 생각해보는 게 좋겠네.”

“자네 생각이 옳은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는 쓸데없는 회의를 없애고 일일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다독거렸어.

체인은 플로리와 함께 세균을 죽이는 세 가지 물질을 골랐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페니실린이었어. 그때 페니실린이 들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직도 잊힌 채로 있을 거야. 플로리는 순수한 페니실린을 따로 빼내기 위해 히틀리라는 의학자까지 함께 일하게 붙잡았어. 드디어 그들은 나쁜 세균에 페니실린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어.

그들은 페니실린을 주사한 실험동물이 병이 낫는 것을 보고 놀랐어.

“이건 기적이야!”

그래서 동물이 아닌 사람에게 사용했는데 어머!, 극적으로 좋아졌어.

“아빠, 나았어요?”

에이∼, 약이 모자라 더 이상 주사하지 못하자 죽어버렸어. 그래서 반드시 많은 양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나라에서는 전쟁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전혀 도와주지 않았어. 플로리는 연구비가 바닥나 엘리베이터를 멈추고 계단을 걸어 오르내렸어. 이제 연구소 사람들은 더 이상 일하지 못하고 뿔뿔이 헤어질 위기에 놓였단다. 이때 그에게 기발한 생각이 번뜩였어.

“그래, 이렇게 하면 모두 일할 수 있겠다!”

플로리는 전쟁에 관련된 일을 하나씩 맡기는 꾀를 내어 계속 연구할 수 있었단다.

1939년 여름, 그는 연구소 사람들과 삽을 들고 연구소 뒤편에 영국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숨을 수 있는 방공호를 팠어. 다음 해엔 독일 전투기들이 영국의 도시를 휩쓸고, 독일군이 곧 쳐들어올 기세였어. 그는 마지막 방법으로 두 아들을 난민 보트에 실어 미국으로 보내고, 독일군이 연구소까지 왔을 때 페니실린을 지킬 계획을 세웠단다.

“독일군이 페니실린 배양균을 모두 가져가면 어떡하지?”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어.

“배양균을 우리 외투의 안감에 바릅시다. 안전할 때 다시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한 명이라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해요.”

몇 사람은 울고, 몇 사람은 외투를 벗어 안감에 발랐다는 이야기야.

“아빠, 윤이도 눈물이 나요.”

독일은 거의 두 달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런던의 하늘에 포탄을 퍼부었어. 그 가운데서도 플로리는 페니실린 논문을 발표했어.

“이제 많은 양을 만들기만 하면 돼.”

그는 논문을 읽고 제약회사에서 그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한 군데도 오지 않았어. 당시 전쟁에 필요한 의료품과 약을 만드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제약회사들이 페니실린이 그렇게 엄청난 것인지 몰랐던 거야. 다급해진 플로리는 미국의 부자인 록펠러가 만든 재단에 도와달라고 부탁했어.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까다롭던 곳에서 그가 요청한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세 해가 아닌 다섯 해에 걸쳐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어. 그만큼 플로리가 눈여겨 보았던 의사였다는 게지.

“우와!”

재단에서 플로리에게 미국의 제약회사를 소개하자 플로리와 히틀리는 미국으로 건너가기로 맘먹었어. 한참 더웠던 여름날, 두 사람은 뉴욕의 날씨에 소중한 곰팡이가 잘못될까봐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엄청난 속도로 도시를 가로질렀어.

세균을 죽이는 새로운 약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학의 연구소로 기자들이 몰려갔어. 십 년이 넘도록 노력했던 플로리는 깜짝 놀라 뒷문으로 도망가며 말했어.

“이 약은 기적이 아닙니다. 그런 약이 있다는 말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다음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다면 그보다 좌절시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았어.

“페니실린을 만든 의사 플레밍을 초청해 자선 바자회를 열 예정이니 표를  사주세요.”

그는 다른 의사가 페니실린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것을 알았어. 연구소 사람들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플로리에게 달려갔어. 플로리는 왕립협회 회장을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단다.

“어, 플레밍이 만들었는데…”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 기자들은 어떤 약이 만들어지려면 얼마나 많은 실험과 연구를 거쳐야 된다는 것을 알 리 없었어. 그동안 플레밍의 둘째부인과 스승, 친구들은 수많은 전설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냈어. 영국의 텔레비전에서는 플레밍이 주인공인 드라마까지 방송되었단다.

“아빠, 플레밍이 아니에요?”

응, 1928년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찾아내고 다음 해 논문으로 낸 것은 맞지만 플레밍이 발견한 푸른곰팡이의 종류는 무려 650여 가지였고 그 가운데 한 가지만 페니실린의 원료가 됐어.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세균과의 전쟁에서 인간을 구해줄 약으로 쓸 생각도 없었고, 더 이상 페니실린을 연구하지도 않았어. 간단히 말해, 플레밍은 실험하는 뛰어난 의사였지만, 플로리같이 높은 수준에 미치는 의사는 아니었어. 그러나 플레밍의 생각대로 세상은 흘러갔어. 식민지에서 온 의사와 그를 도와준 나치를 피해 온 의학자들이 주인공이 되기엔 영국의 자존심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게지.

플레밍이 처칠 수상과 사귄 이야기도 마찬가지야. 처칠이 어릴 때 호수에 빠져 죽을 뻔 했는데 시골 농부의 아들이 헤엄쳐 살려 주었대. 처칠은 소년과 편지를 주고받다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처칠이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니?”라고 묻자 소년이 풀이 죽어 “의사가 되고 싶지만 가난해서 어려워.”라고 답장했대. 그러자 어린 처칠이 아버지에게 친구를 런던으로 데려와 공부할 수 있게 부탁했대. 그 시골 친구가 플레밍이라는 거야. 그러나 처칠은 플레밍보다 나이가 무려 일곱 살이나 많고, 처칠의 아버지가 플레밍의 학비를 댔다는 기록도 없어. 그러자 플레밍의 아버지가 처칠을 구했다고 바뀌었지.

다음은 플레밍이 페니실린으로 폐렴에 걸린 처칠 수상을 낫게 해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이야기야. 참, 황당하지. 처칠의 폐렴은 페니실린이 아니라 설파디아진이라는 다른 약으로 고쳤단다.

떠벌이였던 플레밍도 자주 이런 말을 했대요.

“난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없어.”

“정말?”

아빠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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