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에 환자도 줄고 수입도 줄어 계속 병원운영을 하기가 힘들어 한동안 난감했었다. 탈출구가 없을까 이리저리 궁리해 보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 어떠한 실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비가 오거나해서  환자가 없을 때 영화진흥공사에서 1편에 500원을 내고 인터넷으로 영화를 보곤 했다.

영화 `오발탄'을 본 것이 그즈음이었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알 듯 모를 듯, 안개와 같이 흐릿한 말을 반복하는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가자.” “가자”

6.25전쟁 후 암울하고 방향감각을 잃은 그 시대를 암시하는 외침이었는데  그 당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나의 외침이 아니었나싶다.

한동안 고민 끝에 남은 인생을 `성' 과 `결혼'에 대한 상담과 그에 대한 글과 강의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방향을 잡았다. 생활비는 최대한 절약하기로 했다.

그즈음 우연한 기회에 의사신문에 `진료실주변'이라는 지면을 통해 글을 쓰게 되었는데 10년이 다 되어간다. 어릴 적부터 좋은 글을 읽을 때 쉽게 감동을 받고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있었지만 글 쓰는 데 소질이 있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일기도 꾸준히 써본 적도 없고 백일장에 나간 적도 없다. 고등학교 교지에 `수학여행기'라는 감상문을 한 번 쓴 적이 있고 대학교 교지에 산문을 한 편 썼을 뿐이다. 그 때도 원고 청탁을 받고 한 달 이상을 끙끙대며 쓴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 잘리지 않고 200회 가까이 쓰고 있고 얼마 전에는 감사패까지 받았다. 감사는 내가 해야 되는데  감사패와 상금까지 받으면서 내심 당황한 것은 사실이다.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내가 지난 10년 동안 의사신문 덕분에 의자에 앉는 시간이 많아졌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보내면서 나의 과거와 현재가 많이 정돈 되었다.

요즘은 사색의 깊이에 고갈이 있어 글을 씀으로써 자신을 안으로 정돈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흐트러짐을 느끼고 열정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충만하지 않는 생각을 깊은 사색이 없이 짜내다 보니 글을 쓴다는 것이 즐겁기보다는 하나의 고역이 되곤 하지만 많은 선생님들이 눈감아주고 격려해 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진료실 주변'을 통해서 많은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한 달 전에는 대구에서 정형외과를 개업하시는 선생님께서 아내와 같이 병원을 방문했다. `진료실 주변'의 애독자이신 선생님은 나에게 손으로 쓴 편지를 두 번이나 보내셨던 분이다. 차를 타고 지나다가 간판을 보고 혹시나 하고 방문했다한다.

내가 쓴 글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고 특히 `두 노인'은 지금도 자주 보면서 자신을 추스르고 있다고 하였다.

최근엔 두 분의 선생님으로부터 본인이 쓴 책과 그림을 선물 받았다. 평소에 아는 분이 아니지만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라는 글과 함께 보낸 것이다.

그동안 많은 선생님께서 전화로, 문자로 격려해 주셨고 만나기도 하였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청년들에게 결혼에 대해서 강의를 부탁해서 간 적도 있고 어느 선생님과는 자녀들의 결혼 문제도 오간 적도 있다.

한 달에 3번 정도 `결혼관'이나 `부부의성'에 대한 강의를 청년들에게나 부부들에게 강의한다. 강의를 통해 순결과 책임감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청년들을 볼 때 보람을 느끼고 성에 대해서 자유함과 친밀함을 가지는 부부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강의도 10년 전부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마음에 품고 시작한 것들이 이루어져가고 있는 것을 볼 때 나 자신도 놀라게 된다. 우연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결단코 우연만이 아니라 소망을 가지고 그것을 위하여 애쓰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일어나는 필연이라 생각된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루쉰. 고향) 그렇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희망은 생겨난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한다. 희망을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가 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된다. 꿈은 이루어진다. 우리자신에게나 자녀들에게나 꿈과 소망을 심어주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애쓰며 시작하는 것이 꿈을 이루는 비결이다.

점점 살기가 힘들어 간다. 개업하는 의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이 어둠이 가면 새벽이 올 것이다. 오래 참고 견뎌야 한다. 파도가 출렁이지만 깊은 바다의 물은 고요하듯이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평강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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