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 회장

재벌기업이 본격적으로 병원 설립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재벌그룹과 연계되어 있던 병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과 같은 재벌병원이라고 부를만한 규모는 아니었다. 이렇듯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재벌병원은 이 사회, 특히 병원계에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의 영향도 주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먼저 순기능,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재벌병원들의 등장은 우리나라 병원계를 양과 질적인 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게 하였다는 점이다. 우선 병원 규모가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고, 규모의 증대만큼 시설·장비가 현대화되었으며, 의료 인력의 수준 또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우수해졌다.

무엇보다도 의료보험제도 시행 이후 환자들의 진료비 부담이 줄어들고 그에 따른 병원문턱이 낮아지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환자들을 재벌병원들이 상당수 흡수함으로써 환자들이 어렵지 않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환자들이 최첨단 의료장비와 시설 그리고 우수한 의료 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재벌병원을 비롯해 대학병원 등 대형병원에 대한 높은 선호도를 보여 이들 병원으로의 `환자몰림현상'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이들 재벌 및 대학병원과 같은 대형병원은 몰려드는 환자들을 원활히 수급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계속해서 병원규모를 확대하고, 또 새 병원을 건립하여 계열화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병원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병원그룹' 대열에서 뒤처진 대학병원을 비롯한 수많은 중소병원들이 내원환자 부족현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런 현상은 급기야 이들 병원의 경영난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병원들의 이러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만 갔다. 그런데 이러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함께 최근 들어 병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정부나 국민 모두가 대형병원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병원의 양적 증가를 마치 공통된 현상으로 보며 모든 병원들을 `부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재벌병원을 비롯한 대형병원들이라고 해서 경영에 어려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려움이 극심한 경영난으로 도산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수많은 중소병원들 만큼이야 하겠는가. 그래서 수많은 중소병원들은 대형병원들이 비록 그것이 소문일지라도 `어디에 병원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경기에라도 걸린 듯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그것은 앞서 밝혔듯이 이 사회가 몇몇 대형병원들이 주도하고 있는 `병원 몸 불리기'를 우리나라 전체 병원들의 공통된 현상인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2012년도 건강보험수가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도중 병원계 인사들이 수가협상에 따른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한 정치인을 만났는데 그 정치인이 `요즘 병원들이 계속 건물을 짓는 것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냐. 그러면서 무슨 수가타령이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을 전해들은 많은 병원인들은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정치인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수가현실화를 이룰 수 있겠느냐”고 개탄을 하면서 그 비난의 화살을 대형화를 주도하고 있는 일부 병원들에 돌렸다고 한다.

크든 작든 모든 병원들은 `병원계'라는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큰 병원은 큰 병원대로, 작은 병원은 작은 병원대로 각각 주어진 역할과 기능이 있다. 병원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발전을 우선적으로 꾀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다른 병원들의 역할과 기능도 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모든 병원들이 골고루 발전해 나가고, 진정 국민들을 위한 병원으로 굳게 설 수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김윤수 <서울시병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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