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바이올린 협주곡을 뽑으라 하면 으레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을 손꼽는다. 사람마다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바이올린 협주곡을 거론할 때면 누구라도 반드시 베토벤의 작품을 중심에 놓고 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곡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보여주는 감미롭고 여성적인 선율과는 달리 남성적인 비장함과 애수를 느끼게 만든다. 지금까지도 이 작품의 품격과 장대함을 능가할 만한 협주곡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언제나 이곡을 들으면 움츠려 들었던 마음에 자신감이 충만하게 되고, 어려운 현실에 부닥쳤을 때는 좀 더 적극적으로 현실을 맞이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생길 뿐 아니라 이 곡에는 삶을 고귀하게 여기도록 하는 품위가 서려 있다.

그러나 이 곡이 불후의 명작으로써 인정을 받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을 필요로 했다. 이곡은 베토벤 나이 38세인 1806년에 작곡되었는데, 이 시기는 교향곡 5번 `운명'과 6번 `전원' 을 쓰기 2년 전으로 창작의 세계가 한창 무르익었을 시기였다. 이 곡은 당시 빈 극장의 악장인 프란츠 클레멘트를 염두에 두고 작곡하였는데, 초연할 당시 악보가 당일 도착해 클레멘트가 오케스트라와 리허설도 없이 급하게 연주하게 되어 만족스럽지 못한 공연이 되고 말았다. 한편 청중들의 반응도 그 당시로서는 곡이 너무 웅장하고 해석이 어려운 데다가 장시간 연주되는 데 지쳐 두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평론가 세이야는 “이곡은 독창성과 다양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곡 전체를 수놓았고, 클레멘트 바이올린의 정평한 기술과 쾌적하고 힘찬 연주는 바이올린의 노예같이 생각되었다.”고 호평을 하기도 했다.

1 악장은 Allegro ma non troppo로서 팀파니의 가벼운 3연타로 시작되는데 이 팀파니의 연타는 전 악장을 통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부드럽고 긴 관현악의 투티(tutti) 뒤에 오케스트라에 의해 제시된 주제가 독주 바이올린에 의해 제시되면서 곡이 펼쳐지게 된다. 팀파니 리듬이 간간히 재현되면서 오케스트라와 독주 바이올린과의 긴밀한 조화를 이루며 발전되어 나가고 있어 곡의 우아함이 돋보이고 있다.

2 악장은 Larghetto로 거의 전 악장을 통해 단일 주제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악음기를 단 현악기군의 아름다운 주제가 제시되면서 3개의 변주가 이어지게 되는데 전 악장을 통해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감정이 넘쳐흐르면서 가곡풍의 독주 악기가 모습을 드러내며 솟구칠 듯한 약동감과 평화로움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3 악장은 Rondo Allegro로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황제'의 마지막 악장과 흡사한 화려한 악장으로 민속적인 멜로디를 담고 있는데 반복의 미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론도 주제의 주요한 주제를 바탕으로 찬란하고 화려한 독주 바이올린의 기교가 눈부시게 나타나는 이 악장은 종결부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루며 장대한 막을 내린다.

종교적이리만큼 엄숙하고 장중한 이 협주곡은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철학적인 협주곡의 하나로 나의 마음속에 항상 잔잔히 흐르고 있다.

■들을만한 음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Vn) 앙드레 클뤼탕스(지휘) 프랑스 국립방송교향악단(1976, EMI), 헨릭 쉐링(Vn) 한스 슈미트 이셀스테트(지휘) 런던 심포니교향악단(1972, Philips), 예후디 메뉴힌(Vn) 빌헬름 프르트벵글러(지휘) 베를린 필하모니(1953, DG), 정경화(Vn) 키릴 콘드라신(지휘) 빈 필하모니(1982, Decca)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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