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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老病死와 환자별 맞춤 의료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102〉
의사신문 | 승인 2019.02.01 12:04

정 준 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명예교수


불교에서 사람 일생 중 만나는 4가지 고통이라는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두 의학적 사건이다. 생로병사는 부처님이 처음 가졌던 종교적 질문이자 화두(話頭)이고, 수많은 불교 경전은 이에 대한 답이고 행동강령인 셈이다.

2600년 전에 인도에 살았던 싯닷타(Siddhartha, 석가모니)는 인간 존재와 숙명에 대하여 깊은 성찰을 한 선각자이며 해결책을 제시한 천재였다. 인도의 작은 나라 왕자로 태어난 그는 부왕의 정성 어린 배려로 29세까지 매우 안락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였다. 불경에 의하면 출가해 세상을 구하는 부처님이 될 아들의 운명을 바꾸어 왕국을 유지하려는 아버지의 의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결과는 거꾸로 나타났다. 어떤 목적을 가진 행동은 때때로 그 일을 반대로 진행하게 만든다. 인연이란 끈의 마지막은 인위적으로 또 운명적으로 한번 더 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술 중독자이면 아들은 아버지를 흉내 내어 같은 술 중독자가 되기도 하고, 또는 술의 폐해에 진절머리가 나 입에 대지 않기도 한다. 세상사와 인간사가 사람의 능동적 의지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전혀 경험하거나 생각 조차 하지 않았던 그 왕자가 늙어서 모습이 추해진 노인과 일어나지도 못하는 병자를 우연히 만난 것이 인연을 다시 바꾸었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4가지 고통인 생로병사가 본인의 잘못으로 생긴 것이 아닌 숙명적 일로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간이 되면 누구나 이 세상을 하직한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충격이었으리라. 더욱이 그때 싯닷타는 이미 결혼해 아들까지 하나 있었다.

불교에 심취했던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부자이고 가정적인 아버지가 만든 `밝은 세계'에서 자란 주인공이 불량배들의 `어두운 세계'을 만나 갈등을 겪는다. 석가모니 왕자는 철저하게 `밝은 세계'에서만 철없게 살아온 것이다. 어릴 때 경험하지 못해 훨씬 더 충격을 받은 그는 `철없게'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한밤중에 출가(出家)를 하고 순수한 진지성과 탁월한 영적 능력으로 큰 깨달음을 얻어 오늘날의 불교를 이루었다.

그러면 석가모니가 깨달은 진리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답을 할 능력은 나에게 없다. 많은 책자에 의하면, 연기법(緣起法)이라고 한다. 즉, 모든 세상사는 우연이 아닌 필연 즉, 서로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있고, 과거의 인연에 따라 `업(業)'이라는 어느 정도 삶의 윤곽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현재의 생각과 행동이 앞으로 전개되는 일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삶에 만연한 고통의 실상을 통찰하고 원인을 파악하여 성찰 끝에 해답을 제시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겪는 고통과 속박은 무상(無常)인 세계에 대한 아집과 집착 때문이다. 따라서 밝은 지혜로 무지(無知)를 없애고, 깊은 선정(禪定)으로 욕망을 잠재우고, 올바른 생활로 자신을 다스리라고 가르친다. 앞에서 말한 술 중독자 이야기에서 두번째 경우이다.

싯닷타가 깨달아 이 세상을 구하는 부처(Buddha)로 까지 숭배 받게 된 것은 해탈 후 45년간 가르침과 행적 때문이었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일관되게 근본적인 질문을 하였고, 답을 구하였으며, 깨닫고 말한 것을 그대로 행동했다. 뛰어난 사람들의 공통적 특징은 철저하다는 데에 있다. 이런 류의 철학적 종교적 질문은 젊어서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차이점은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고 진실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가이다. 부처는 생로병사로 대표되는 인간사의 고통을 현상적으로만 보지 않고 근본적인 정신 영혼의 수준에서 파악하고 치유하려 했다.

`생로병사'를 의학적으로 한 번 살펴 보자. 우선 왜 태어나는 것 자체가 괴로움일까?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태어나는 것이 고행의 시작이란 뜻이겠다. 또, 우리 인간에게서 출산은 어머니와 자식 모두에게 생사가 걸려있는 중요한 순간이다. 다른 동물과 달리 영아의 큰 머리 때문에 일종의 조산(早産)을 하는 셈으로 모자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가 있다. 그 다음, 글자의 순서로 보면 “늙어서 병이 생긴다”. 병들어서 늙는 것이 아니라 늙어야 병이 든다. 질병이란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몸의 항상성과 균형이 깨져 생기고, 이런 유연성이 나이가 들면서 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유전자와 주변 환경 변화에서 몸에 이상 소견이 나타나지만 방어기전으로 정상상태를 유지하다가 늙으면서 기능이 떨어져 점차 해결하지 못하고 질병으로 진행되고는 한다.

대부분 질병이 신체의 유기적 현상에서 생긴다고 병리학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현대의학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같은 질병이지만 사람에 따라 발병, 병력, 진행이 다르고, 치료에 대한 효과, 예후가 다른 것을 흔히 경험하고 있다. 이는 환자 각자에서 유전적 소인이 다르고 경제 상황, 영양, 청결, 면역 등 환경도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마음가짐과 의지 등 정신적 요소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각자 다른 과거 업보로 병이 생겼으나, 각자의 인연에 따라 치료하고 다시 좋은 인연을 쌓아 경과를 호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연기의 작용은 사람마다 복잡하게 다르니 `환자 별 맞춤 진료'가 필요한 것이다. 서양의학에서도 최근에야 이 용어가 의료계의 화두가 되었으나 원래부터 의료는 환자 개인 별로 각자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생각하면 사람 자체가 전체적 공통성과 개인별 특수성의 혼합체이다. 우리의 몸과 정신과 영혼은, 같고 다른 환경에서 작용하는, 같고 다른 인연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을 맞춤의학과 접목시키면 더 온전한 진료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불교는 `신의 종교'가 아닌, 우리 실존의 괴로움에서 시작된 `인간의 종교'이다. 시대를 뛰어넘은 선각자이자 천재인 싯닷타는 생로병사가 인간의 숙명임을 깨닫고 진솔한 삶을 위한 정신적 육체적 대응책과 영적 방향을 이미 2600년 전에 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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