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의 미망인을 위한 은밀한 바이올린과 기타의 이중주
파가니니는 마술과도 같았던 혁신적인 기교와 통절한 서정적 연주, 스스로 무대 위에서 만들어낸 악마 같은 이미지로 역사상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들 중에서도 가장 최고봉인 전설적 인물이다. 이런 그가 생전에 기타 연주의 명인으로도 알려져 있었는데 정작 기타에 대해서는 바이올린처럼 그 재능을 뽐내지 않았다.

그는 “기타를 좋아하진 않지만 이 악기는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수단이자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환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한 일은 바이올린은 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바이올린은 나의 여주인이지만, 기타는 나의 주인이다”라고까지 극찬을 하기도 하였다. 사실 그의 바이올린 기법 중 왼손 피치카토나 더블스토핑 하모닉스 등 다수는 기타의 주법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많다.

기록에 따르면 연주회에서 파가니니는 바이올린과 기타를 번갈아가며 쉽게 연주했다고 한다. 그는 많은 연주회에서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이중주를 연주했지만 대부분 사적인 자리에서만 연주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소나타들이 작곡된 시기는 1805년에서 1808년 사이인데 이때는 피렌체의 농원주인인 미모의 젊은 미망인과 사귀면서 애정 도피행각으로 은둔해있던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 `농원의 일을 도우면서 취미로 기타를 쳤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음악학자들은 그 여인을 위해 많은 기타 작품을 작곡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1837년 마지막 공개연주회 때에는 당시 기타의 명인 루이지 레냐니와 함께 바이올린과 기타 이중주를 연주했을 만큼 기타에 대한 애정이 숨겨 놓은 애인처럼 각별하였다.

이 작품 역시 공개적으로 연주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지인들 앞에서만 연주하면서 그 외의 사람들에겐 비밀로 하였다. 기타에 대한 은밀한 애착이 많았던 그는 실제로도 바이올린 작품보다 기타와 관련된 곡을 더 많이 작곡했다. 기타 독주를 위한 소품들이 104곡에 달하며 기타와 바이올린을 위한 이중주곡들을 28곡, 기타가 참여하는 트리오를 4곡, 바이올린, 비올라, 기타, 첼로를 위한 사중주곡을 15곡 등 그가 작곡한 기타와 관련된 작품이 100여 곡이나 된다. 이들 중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작품번호 3 그가 루카에서 엘리자 바치오니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독주자로 활동하던 시기에 작곡하여 그의 친구 마이트레 텔레피안느에게 헌정하였던 작품이다.

그의 작품 대다수는 20세기까지 조용히 묻혀 출판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생존 시 자기 작품 대부분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독점하여 사용하였고 죽은 후에 후손들은 그의 작품의 출판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가 출판하기로 한 극소수의 작품 가운데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기타 작품들이다. 그들 중에서도 열두 곡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이중주가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작품번호 2와 3은 각각 6개씩 담고 있으며 모두 두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출판되었는데 역사적으로 많은 기타 작품들 중 걸작으로 뽑히고 있다.

지금까지 자필 원고는 발견되지 않았고 1821년 출판된 사본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악보이다. TV드라마 〈모래시계〉의 `혜린의 테마'로 한때 유명했던 곡이 바로 작품번호 3의 6번째 곡이다.

△제1곡 A major `Sonata Per Novene'(1.Minuetto,Adagio-2.Polenese, Quasi Allegro) 느린 템포로 마치 두 마리의 백학이 우아하게 춤을 추듯 감미롭게 장식한다. 후반은 폴로네이즈로 숲속의 요정들이 춤을 추는 듯 기교가 넘친다.

△제2곡 C major (1. Larghetto espressivo-2. Allegro Spiritoso) 규모는 작지만 잔잔한 호수 위에 백조가 노니는 듯 매우 풍부한 표현의 아름다운 악장이다.

△제3곡 D minor (1. Adagio maestoso-2. Andantino galantemente) 마치 바이올린 협주곡의 한 악장 같은 느낌을 주며 당시 연주회에서 유행하던 기교적인 소품 형식을 취하지만 장중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제4곡 A major (1. La Sinagoga, Andante calando-2. Andantino con brio) 조용한 교회음악과 같이 시작하는데 파가니니는 `유대교회(La Sinagoga)' 라는 제목을 붙였다.

△제5곡 D major (1.Andante Moderato-2.Allegro spiritoso) 매우 화려한 패시지로 여성적이 섬세함이 있고 마치 둘이 대화하듯이 두 파트가 반복하면서 끝맺는다.

△제6곡 A minor (1.Largo con precisione-2.Tempo di Walzer) 초가을 호수에서 뱃놀이하듯 미끄러지는 듯 감미로운 선율로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들을 만한 음반
△조르지 테레베시(바이올린), 소냐 프룬바우어(기타)(Telefunken, 1976)
△이치하크 펄만(바이올린), 존 윌리엄스(기타)(CBS, 1976)
△프랑코 메쩨타(바이올린), 아드리아노 세바스티아니(기타)(Dynamic, 1998)
△길 샤함(바이올린), 외렌 죌셔(기타)(DG,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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