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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한 독자 질문과 대답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76〉
의사신문 | 승인 2017.12.12 16:31

정 준 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

몇 개월 전 이 컬럼에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수필을 게재했었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행복은 몸과 마음의 욕구가 충족하여 부족함이 없는 상태'라고 되어있으나 내 의견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상태에서 행복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예로 부자가 되어 행복한 것이 아니라 돈이 많아지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낀다는 지론이었다. 논리적으로 행복해지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몸과 마음의 욕구를 적게 가지는 것이다. 내 방식대로 생각하면 욕구를 점차 줄이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독자 한 분이 “행복은 몸과 마음의 욕구를 점차 줄이는 과정에서 생긴다”는 내 지론이 이해가 안되니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는 이메일을 보내주었다.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내 경험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따듯한 봄날 오후에 우리 부부는 서울 근교 남한강과 호숫가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치가 좋은 외딴 장소에 호수에 바짝 붙여 높은 축대가 쌓여있고 그 위에 지은 아름다운 2층별장이 눈에 띄었다. 정원에는 다채로운 꽃이 가득하여 이런 집에 사는 사람이 궁금하였다.

아내는 “저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면서 부러움에 가득 찬 탄식을 하였다. 흥미가 생긴 우리는 길을 돌아 그 집에 가까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때 현관문이 열리면서 집주인이라고 생각되는 여자분이 나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저절로 “이런 집에 사니 얼마나 행복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였다. 그 여주인은 잠깐 생각을 하는 표정이더니 “시간이 되면 들어와 녹차 한잔 하시겠어요?” 하고 말하였다. 이 뜻밖의 초대에 우리는 당연히 응하게 되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거실에 고급 응접세트가 놓여있었다. 천장은 드라이브 골프채를 휘둘러도 될 만큼 높고 벽과 바닥에는 하얀 대리석이 깔려있었다. 차를 대접하면서 그 집 부부는 그간의 사정을 토로하였다. 2년 전에 이들도 호숫가를 걷다가 경관이 좋은 이곳에 별장을 지을 생각을 했단다. 이 땅의 소유자를 찾아가 흥정 끝에 적당한 값으로 땅을 구매하고는 너무나 행복했단다.

그러나 실제 토지를 측량하여보니 구입한 땅의 대부분은 물밑에 있었고. 땅을 판 사람을 찾아보니 사기꾼으로 이미 외국으로 출국을 한 상태였다. 오기가 생긴 부부는 자기 땅인 호숫가에 축대를 쌓아 흙을 덮었다. 토목공사 비용이 땅값에 비해서 몇 배나 더 들었고 냉정을 잃은 부부는 다른 곳보다 더 화려한 건물을 올리고 정원을 가꾸었다.

이번에는 관청에서 와서 불법으로 호수를 메우고 주택용 땅이 아닌 곳에 집을 지었다고 철거명령을 내렸다. 행정소송까지 하였으나 패소하고 요즘은 언제 철거반이 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적당한 위로의 말을 찾을 수 없어 당황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 남편은 단정적으로 말했다. “어리석은 욕망으로 장만한 별장이 우리에게 너무나 큰 불행을 주었다. 우리가 별장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고, 오히려 별장의 노예가 되었다.”고.

이 기막힌 사연을 들으니 행복에 대해 내 의견에 확신이 섰다. 이 분들이 욕구를 작게 가질수록 덜 불행해지고, 더 행복해졌을 것이다. 즉, 축대를 쌓지 않고 별장을 작게 지었다면 지금보다 덜 불행했고, 경관이 평범한 다른 곳에 별장을 지었다면 덜 불행했고, 별장을 아예 안 지었다면 더욱 덜 불행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곳에 축대를 쌓지 않고 별장을 작게 지었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했고, 경관이 평범한 곳에 별장을 지었다면 더욱 행복했고, 별장을 아예 안 지었다면 결과적으로 가장 행복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행복은 가진 것이 적어질수록 더 느끼게 된다. 지구 상의 자원과 재물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무소유는 이타적이고 사회적 공익과 연결된다. 물질적 무소유 만 아니라 정신적 무소유도 포함된다. 다시 말하면 직명과 직위, 학위, 평판, 상찬, 안면 같은 명예욕을 버리는 행동이다. 인간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명예도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인류의 스승이 될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정신적 무소유 또한 이타적인 것이다.

그러나 소극적인 무능력에서 생기는 무소유와는 차원이 다르다. 충분한 능력을 가진 상태에서 자진하여 가진 것을 줄이는 것이 재물과 명예의 노예가 아닌 참다운 인간이 되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길이다. 내 생각으로는 역사상 부처님, 예수님, 간디, 만델라, 호찌민, 우리 사회 가까이에는 장기려, 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이 이런 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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