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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나이의 폭늙음 오디세이아 〈12〉 
의사신문 | 승인 2017.11.27 17:46
유 형 준
한림의대 내분비내과 교수
시인·수필가

나이가 퍽 들어 안팎으로 노화가 일어난 것이 명백히 드러나면, 나이를 묻는 질문에 정확한 연령을 따져 대답해야하는 번거로움만은 최소한 없을 것 같다.   노인병학자들은 더러 “여든 살이 되면 심신 구석구석까지 늙어 어느 부분을 살펴도 노인으로 보인다.”고 하나 이 말도 10년 넘어 지난 주장이니 얼마를 더 기다릴지 가늠하기 어렵다.

공식적으로 어디에 기록하거나 정확한 순서를 매기기 위해 똑바른 나이를 대는 것은 만만하다. 그러나 현재의 생물학적, 사회적, 기능적 상태를 가늠하기 위해 나이를 물어오면 머뭇거릴 때가 드물지 않다. 나이테처럼 손가락 끝 지문에 변화가 와서 찍기만 하면 꼼짝없이 나이가 박혀 나온다면 모를까, 대개는 분위기나 사정에 따라 얼마간씩은 높이고 낮추어 대답할 마련을 꾀 있게 할 요량에 망설여진다.

이런 속사정과는 무관하게 궁금한 사람은 묻는다.

“몇이세요?”

곧 물어오는 이의 입장을 훔쳐 적은 쪽으로 대는 것이 좋은지 많은 쪽으로 이르는 것이 좋은지 결정을 한다. 혹시 나중에라도 정확성이 문제가 될 것 같은 분위기면 `세는 나이'와 `만(滿)나이'를 적절히 가려 쓰면 된다.

환자는 질병에 걸려서 여러 가지 걱정을 하는 자이고, 의사는 일정 기준 이상의 의학적 지식과 의료기술을 소지한 자로서 공적 자격을 받은 자라고 정의할 수 있다. 환자와 의사는 질병이라는 공동 주제를 매개로 의료 현장에서 만난다. 질병은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생명의 연약과 생의 유한성을 일깨우는 메시지를 주지만 환자와 의사가 똑같은 강도로 느껴 인식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질병은 환자에게 주관적 실체이고 의사에겐 의학적 상태며 진행과정으로 보다 객관적 실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질병의 의학적 기준으로 단순화시키긴 어렵다. 따라서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학자들에 따라 다양하게 설정된다.

예를 들면, 로버트 비치 교수는 의학적 기술에만 집중하는 공학기술자형, 환자에게 선을 베푸는 성직자형,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존중하는 동료형, 환자와 의사가 서로를 동등한 상대자로 인정하는 계약형 등으로 구분한다. 어떤 학자는 크게 둘로 나누어 온정주의에 둔 관계인지 철저한 계약에 기초한 관계인지로 구별하기도 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언에 충실한 히포크라테스형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

그 관계를 어떻게 나누고 설정하든 환자가 의사에게 거는 기대는 같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 해주길, 인간적 동료로서 관심을 가져주길, 과학적이며 기술적 전문능력을 발휘해주길, 병에 대한 합리적이고 자상한 설명을 해주길, 자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즉, 환자의 여러 가지 걱정을 살펴주는 선한 의사를 기대한다. 되 이르면, 여러 가지로 살피기 위해 직업성과 전문성을 겸비하고 꾸준히 자질을 살피고 연마해가는 의사를 만나기를 바란다.

환자가 그런 의사를 여러 가지 선택 기준들 중에 의사의 나이도 분명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이와 경험을 비례 시키는 일반적 생각, 환자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있는가의 고려, 그래도 수월하게 대화가 통할까를 중히 여기는 등으로 의사의 나이는 선택의 여러 기준 중의 하나로 작동하고 있다. 딱 정해진 기준이 없는 것이 사실인지라 어차피 나이에 따른 선택은 환자 개개인의 속사정에 따른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두루두루 뭉실한 것이 어느 한 편으로 기우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면 본래의 나이는 적당한 폭을 갖게 된다. 술, 담배 금하도록 이야기 해주어야할 환자가 의사와 엇비슷한 나이인 것을 병록지에서 확인하면 대뜸 나이를 올려 조금이라도 늙은 자세로 바꾸는 것이나, 거동이 불편하여 이것저것 챙겨줘야 할 거리가 많은 환자에겐 항상 건강하고 활기찬 젊은 위세로 변하는 것들이 나이가 폭을 갖는 사정들이다. `융통성과 진실성이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덕목에 속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면 자기인식이 앞서야 한다.'는 의사소통학 개론을 빌지 않더라도 의사의 나이는 폭을 지닐만하다.

지독한 반복에 이미 멈추어 버린 지 오래된 것만 같은 포용과 유연을 알아차리면서 하루하루 보태어지는 나이의 폭이 적이 걱정이 된다. 외려 굳어가는 폭. 이처럼 답답한 일이 있을까. 안팎으로 늙음이 완연해서도 그 폭이 질기기만 하다면. 흰 가운 옷깃 세워 흰머리를 가린들 그 폭이 부드러워질까.

덤벙 다가선 다음 계절. 흰 가운 훌쩍 벗고 마음속 호젓한 오솔길이라도 걸어 본다. 시계 풀어 속주머니에 넣고 오솔길 폭만큼만 양팔 벌려 숨을 들이쉰다. 불어난 가슴마냥 나이의 폭도 말랑하게 넓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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