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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間食) 이야기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74〉
의사신문 | 승인 2017.11.13 13:50

정 준 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

나는 충청도 시골 출신이다. 세 살 때 서울로 이사 왔지만 궁핍한 시절이어서 우리 식구는 그저 식사를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먹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때로는 고구마나 감자로 밥을 대신하기도 해서, 세 끼를 꼬박 쌀밥으로 먹는 `밥 순이'가 식생활의 이상형(?)이었다. 반면에 우리 집사람은 순 서울사람이다. 광화문 바로 옆 동네에 살며 경제적 여유가 있어 간식을 즐겨 했단다. 정월 대보름 날 일년 동안 부스럼이 생기지 말라고 견과류의 부럼(껍질)을 깨무는 것이 풍습인데 우리 집에서는 식구가 조금씩 나눠먹었다. 처가 집에서는 밤, 호두, 땅콩을 가족마다 한 봉지씩 배당하여 놀란 적이 있다.

우리 집에서 유일한 간식 기회는 제사를 지낼 때였다. 장손 집안으로 5대 봉사(奉事)하여 설날과 추석 차례를 포함해 일년에 열 두 번 제사를 지냈다. 대추, 밤, 감, 배는 상서로움, 희망, 위엄, 벼슬을 상징해 제사상에서 빠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제사가 끝나자마자 재빠르게 밤과 대추를 먼저 챙기는 것이 가장 호사스러운 먹거리였다.

또 다른 나의 개인적인 기호식품은 쌀과 옥수수를 뻥튀긴 밥풀과 강냉이였다. 우리 할아버지는 평소에 술을 즐겼다. 마당 뒤 한군데에 빈 술병이 쌓여 있었고 지나가는 엿장수 아저씨에게 그 중 하나만 건네도 넉넉하게 밥풀이나 강냉이로 바꾸어 주었다. 엿장수 가위소리가 호객소리와 함께 골목에서 들리면 나와 누나는 빈 병을 들고 대문 밖으로 달려나가곤 했다.

결혼 후에 아내가 음식을 장만하고 집안 살림에 여유도 조금 생겨 우리 식구들도 간식을 찾기 시작하였다. 우선 사과, 배를 위시하여 과일을 즐기기 시작하였다. 식품에 대한 기호도 전염되는 것인지 여름 밤이면 모두들 시원한 수박 사냥에 몰두하였다.

결정적으로 내가 간식에 매달리게 된 계기는 위 수술을 받고 나서였다. 위 전체를 절제한 후 덤핑증후군이 나타났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과식을 하면 음식물이 위장관을 천천히 통과하지 못하고 빨리 배설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식사를 조금씩 나누어 해야 온전하게 흡수할 수가 있다. 세 끼는 적게 먹고 틈틈이 다른 음식으로 영양분을 보충하여야 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먹게 하기 위하여 집사람은 온갖 종류의 주전부리를 마련하고 있다. 어릴 때 먹던 밥풀과 강냉이, 밥 대신 먹던 고구마와 감자, 제사상에서 놓여있던 밤과 대추를 비롯한 호두, 땅콩, 아몬드 같은 견과류, 사과, 배, 참외, 딸기, 포도, 복숭아를 비롯한 각종 과일을 즐기게 되었다. 요즈음 과일은 제 계절이 따로 없이 비닐하우스에서 출하되어 일년 내내 먹고 있다.

그 중 내가 제일 많이 찾는 것이 사과이다. 이제는 사과 중독이 되어 하루에 한 개 이상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학교 연구실에서는 비서들이, 외국학회 참석 시에는 같이 가는 대학원생들이 틈틈이 마련해 주고 있다. 제자들은 궁리 끝에 사과 깎는 기계를 내 생일선물로 준 적도 있다. 이런 배려는 식당에서도 계속되었다. 대학로에 단골 식당이 두 군데 있는데 내가 식사 후에는 다른 손님에게는 미안하지만 메뉴에 없는 과일 디저트를 항상 제공한다.

이렇게 다양하고 호사스러운 간식 생활을 하자니 시간이 제법 걸린다. 집에서는 저녁 식사 후부터 잠들 때까지 계속 무언가를 먹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아 차린 바와 같이 내가 편식을 해서, 대부분 영양가가 적은 식품들이다. 별 참을 준비하기 위해서 아내는 전 보다 더 많은 정성과 시간을 쏟고 있다. 덕분에 내 체중은 거의 수술 전 수준으로 회복했고 기운도 많이 되 찾았다.

이제는 이런 내 상황이 지인들 사이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나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식품을 가지고 오기 시작해서, 교수실에는 항상 사탕, 빵, 견과류가 비치되어 있다. 집으로 고구마를 보내신 환자분도 있고, 육포를 만들어 보내주신 친지도 계신다. 많은 분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 드린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이런 기호식품에 집착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영양분 보충이라는 이유 못지 않게 정신적 감성적인 염려와 후원을 식구와 친지에게서 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제사상에 놓였던 밤, 대추를 씹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조상의 음덕을 기대하고, 찐 감자와 고구마에서 어머니의 체취를 느낀다. 계절을 앞선 과일에서 내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아내의 사랑을 실감하고, 식당 디저트에서 VIP 손님의 자부심을 회복한다. 또 지인들의 성원에서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결국 나는 간식을 통하여 주위 사람의 애정을 확인하여 계속 몸과 마음 안으로 내재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감성의 영양분이 투병 생활 동안 나를 우울증에서 지켜주고, 더 나아가 인생은 살만 하다는 자족감,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희망까지도 품게 만들고 있다.

이제 나는 “정성이 깃든 좋은 음식은 몸과 마음을 함께 건강하게 만든다.”를 보여 주는 이상형의 `간식 돌이'가 되었다.

*이 이야기를 위절제 후 고생하는 모든 환자 분에게 위로의 글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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